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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Date post: 11-Dec-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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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7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1) 카지야 켄지 (도쿄대) Ⅰ. 들어가며 Ⅱ. 나카하라 유스케의 주요활동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의 기획까지 Ⅲ. 일본에서의 한국현대미술과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 Ⅳ.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Ⅴ.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 Ⅵ. 나가며 Ⅰ. 들어가며 본고에서는 일본의 미술비평가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介)의 한국현대미술론에 대 해 고찰한다. 나카하라는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 계속하여 한국을 방문하였 으며 일본에 한국현대미술을 소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1975년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韓·5人の作家 5つのヒンセク〈白〉≫전과 1977 년 도쿄 센트럴미술관에서 열린 19명의 한국작가를 소개한 ≪한국·현대미술의 단면 韓 ·現代美術の面≫전과 같은 전시기획에 참여하며, 한국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하 는 이우환을 포함한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등의 한국 작가들의 개인전이 일본에서 개 * 본고를 집필하는데 있어 홍익대학교의 정연심 교수와 박준영에게 나카하라유스케에 관한 한국 문헌 연구 를 제공받았다. 또한, 조사와 집필 과정에서 김영나 교수, 조앤 기 교수, 미츠다 유리 교수의 고견과 협력 을 받았음을 감사드린다. 본고는 2016년6월11일 서양미술사학회와 한국현대미술사학회 주최로 한국예술종 합학교에서 개최된 미술사학대회 심포지움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과거와 현재-’에서 발표한 원고 나카하 라 유스케의 한국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심포지움에서의 의견과 질문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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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7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1)

카지야 켄지 (도쿄대)

Ⅰ. 들어가며

Ⅱ. 나카하라 유스케의 주요활동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의

기획까지

Ⅲ. 일본에서의 한국현대미술과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

Ⅳ.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Ⅴ.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

Ⅵ. 나가며

Ⅰ. 들어가며

본고에서는 일본의 미술비평가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介)의 한국현대미술론에 대

해 고찰한다. 나카하라는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 계속하여 한국을 방문하였

으며 일본에 한국현대미술을 소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1975년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韓国·5人の作家 5つのヒンセク〈白〉≫전과 1977

년 도쿄 센트럴미술관에서 열린 19명의 한국작가를 소개한 ≪한국·현대미술의 단면 韓

国·現代美術の断面≫전과 같은 전시기획에 참여하며, 한국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하

는 이우환을 포함한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등의 한국 작가들의 개인전이 일본에서 개

* 본고를 집필하는데 있어 홍익대학교의 정연심 교수와 박준영에게 나카하라유스케에 관한 한국 문헌 연구

를 제공받았다. 또한, 조사와 집필 과정에서 김영나 교수, 조앤 기 교수, 미츠다 유리 교수의 고견과 협력

을 받았음을 감사드린다. 본고는 2016년6월11일 서양미술사학회와 한국현대미술사학회 주최로 한국예술종

합학교에서 개최된 미술사학대회 심포지움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과거와 현재-’에서 발표한 원고 「나카하

라 유스케의 한국」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심포지움에서의 의견과 질문을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http://dx.doi.org/10.16901/jawah.2016.08.4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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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될 때마다 도록에 전시문을 썼다.1) 나카하라 이외의 일본 미술비평가들도 한국 작가

에 대한 글을 썼으나, 나카하라가 한국작가를 논할 기회가 단연 많았다.2) 나카하라는

한국의 현대미술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가. 그것이 그의 비평 속에서 어

떻게 위치하고 있는가. 본고에서는 우선, 앞서 언급한 전시에 이르기까지 미술비평가로

서의 나카하라의 활동을 살펴보며, 그에게 있어서의 한국미술의 의미를 알아본다. 그리

고 나카하라가 기획에 참여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과 ≪한국·현대

미술의 단면≫전에서 나타난 나카하라의 논의를 중심으로 고찰하며, 그가 한국현대미술

의 정체성에 대해 어떠한 이론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Ⅱ. 나카하라 유스케의 주요활동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의 기획까지

20세기 후반의 일본현대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3명의 미술비평가인 하리우 이치

로(針生一郎, 1925-2010), 토노 요시아키(東野芳明, 1930-2005),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

介, 1930-2011)는 에도시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가인 세 가문을 칭하는 ‘고산케(御

三家)’3)라는 단어를 빗대어, 미술비평의 ‘고산케’라 불리었다. 하리우는 정치적인 시점

을, 토노는 문학적 문체, 그리고 나카하라는 이론적인 고찰을 통한 미술비평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각자의 특징을 살린 미술비평을 전개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까지

일본 현대미술을 이끌었다.

나카하라는 도쿄대학 이학부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1953년 대학원에 진학하여 노벨

1) 나카하라가 한국미술을 논한 논고는 30편을 넘는다. 서지정보는 다음과 같다. 加治屋健司, 「中原佑介の韓

国美術論書誌」, http://www.academia.edu/27533007/(2016年8月5日閲覧). 또한, 2016년 2월 DIC 가와

무라 기념미술관에서 열린 ≪미술은 말한다: 비평가 나카하라유스케의 안목(눈) 美術は語られる 評論家·

中原佑介の眼≫전에서 이우환의 <쪼으면서 刻みより>(1972년경), <유적지에서3>(1984), <바람으로부

터>(1986년)와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1977년), 윤형근<UMBER-BLUE ‘77>(1977), 심문섭<현전

7841>(1978)이 전시되었다. 이우환의 <바람으로부터> 이외의 작품은 나카하라 유스케의 소장품이다.

1978년4월 나카하라와 윤형근, 심문섭, 박서보, 시로다사다오, 김구림이 한국의 마이산에서 촬영한 사진

도 2점 전시되었다.

2) 미네무라 토시아키도 한국현대미술에 대해서 20편이 넘는 많은 글을 남겼다. 서지정보는 다음과 같다.

加治屋健司, 「峯村敏明の韓国美術論書誌」, http://www.academia.edu/27533381/(2016년 8월 5일 검색).

3) 고산케(御三家)는 에도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가 중 유력한 세 가문을 의미하는 말로, 어떠한 분야

에서 뛰어난 3인을 지칭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9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의 아래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가 석

사 논문을 집필하면서 쓴 「창조를 위한 비평 創造のための批評」이 미술출판사에서 열린

미술평론모집에서 1위를 하게되면서 55년부터 미술비평가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의 데뷔작인 「창조를 위한 비평」은 비평가 나카하라 유스케의 생각을 드러낸 글

이었다. 나카하라는 “비평은 작가가 창조하는 것의 비밀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

고, 그것을 변혁하기 위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며, 비평이 작가의 제작에

영향을 주는 능동적인 활동이 되어야 할 것임을 주장하였다.4) 실제로 나카하라는 실천

적 비평을 지향하여 동시대 일본미술에 대해 활발히 논하였다. 특히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요미우리 신문, 미술비평, 미술수첩과 같은 신문과 잡지에 다수의

전시글과 작가론을 기고하며 일본의 현대미술 상황에 대한고찰을 보여주었다.

또한, 나카하라는 작가와 직접 대화하며 교류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나카무

라 히로시와는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5) 미야카와 아츠시와 이시코준조와 같은 비평가들

뿐만 아니라 이케다 타츠오와 다카마츠 지로 같은 작가들과 함께 ‘그림자(影)’에 관한 논

쟁에 관여했다.6) 그리고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중요한 전시들을 기획했다. 1963년

나이카화랑에서 ≪부재의 방 不在の部屋≫전을 기획하여 다카마츠 지로, 나카니시 나츠

유키, 아카세가와 겐페이 등을 참여작가로 선정했다. 1968년 도쿄화랑과 무라마츠화랑

에서 이시코 준조와 ≪트릭스 앤 비전 トリックス·アンド·ヴィジョン≫전을 공동 기

획하여 다카마츠 지로, 세키네 노부오, 스즈키 요시노리, 이이다 쇼우지 등의 작품을 선

보였다.7)

그 중에서도 중요한 전시로는 1970년에 개최한 제 10회 일본국제미술전(도쿄비엔날

레)를 들 수 있다.8) 이 전시는 도쿄도미술관, 교토시미술관, 아이치현문화회관(현, 아이

4) 中原佑介, 「創造のための批評」, 美術批評, 第41号(1955年5月): 6; 創造のための批評 戦後美術批評の

地平(中原佑介美術批評選集第1巻, 東京: 現代企画室+BankART出版, 2011年), 11 재수록.

5) 中原佑介·中村宏, 「≪観光芸術≫問答 往復書簡による」, 美術手帖, 第270号(1966年7月): 34-37. 나카

하라의 글은 ‘관광예술’ 문답 ≪미술 안에서 4가지 “관광” 「「観光芸術」問答 「美術の中の4つの 観光」展」≫

전을 다음에서 채록. 前衛のゆくえ アンデパンダン展の時代とナンセンスの美学(中原佑介美術批評選集

第3巻, 東京: 現代企画室+BankART出版, 2012年), 195-198.

6) 그림자 논쟁에 대한 나카하라의 다음 글 참조. 加治屋健司, 「解題」, 前衛のゆくえ, 303-304.

7) ≪부재의 방 不在の部屋≫전에서는 앞의 논문과 黒川脩一·宮田有香編, 内科画廊 ’60年代の前衛(京

都:京都造形大学京都芸術短期大学芸術館, 2000年)를 참조. ≪트릭스앤비전 トリックス·アンド·ヴィ

ジョン≫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참조하였다. 成相肇, 「「トリックス·アンド·ヴィジョン展 盗まれた

眼」について 最近の調査から」, 府中市美術館研究紀要, 第15号(2011年3月): 23-47; 同, 「「トリックス·

アンド·ヴィジョン展」研究追補および石子順造関連文献目録補遺」, 府中市美術館研究紀要, 第17号(2013年3月):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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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현미술관), 후쿠오카문화회관(현, 후쿠오카현립미술관)을 순회했다. 전시의 커미셔너

를 역임한 나카하라는 ‘인간과 물질’을 테마로 해외작가 27명, 일본국내작가 13명의 총

40명을 선정하였다. 이 전시는 1969년 하럴드 제만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 When

Attitudes Become Form≫전(베를린 쿤스트할레)와 빔 베렌의 ≪느슨해진 나사 Op

Losse Schroeven≫전(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등과 같이 미니멀 아트, 프로세스 아트,

개념 미술, 아르테 포베라 등을 포함한 새로운 미술 경향을 소개한 획기적인 전시였다.

이 전시회 이후 그는 1975년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전의 기획에도 관련하였다.

Ⅲ. 일본에서의 한국현대미술과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

도쿄화랑의 전시에 대해 검토하기에 앞서, 일본에서 한국현대미술이 어떻게 소개되

어왔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9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에 걸쳐 일본미술회 등의

미술단체의 전시회에 재일조선인 화가들이 출품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곽인식, 조양

규와 같은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9) 그러나 일본에서 한국미술가들이 본격

적으로 소개 되기까지는 1965년의 국교정상화 3년 후인 1968년 7월부터 9월에 걸쳐 도

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현대회화전 韓国現代絵画展≫까지 기다려야만 했

다. 이 전시는 20명의 작가들의 회화작품 78점를 전시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표준적인

전시기간이었던 39일 동안 8820명이 방문했다.10)

8) ≪인간과 물질 人間と物質≫전에 대하여 다음 문헌을 참조. 전시회 도록 第10回日本国際美術展tokyo

biennale 1970 人間と物質 between man and matter(東京: 毎日新聞社, 1970年); 及び同報告集, 渡部葉

子, 「「非常な冒険」の展覧会 東京ビエンナーレ’70再考」, 東京府美術館の時代 1926-1970(東京都: 東京

都現代美術館, 2005年), 150-152; 「人間と物質」展の射程 日本初の本格的な国際展(中原佑介美術批評選

集第5巻, 東京: 現代企画室+BankART出版, 2011年); 慶應義塾大学アート·センター編, 東京ビエンナーレ’70再び(東京: 慶應義塾大学アート·センター, 2016年). 본 전시는 전후 일본미술사에 있어서 매우 중

요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예로, 1966년부터 72년까지의 개념미술

에 관한 정보를 정리한 루시 리파드의 저서에는 전시의 개념과 출품작가 이름은 게재되어 있지만, 커미셔

너였던 나카하라의 이름은 누락되어있다. Lucy Lippard, 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 (New York: Praeger, 1973), 165.

9) 이 시기의 재일한국인 화가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在日本朝鮮美術家たちの歩み」, 白玲編, 在日朝鮮美術

家画集(東京: 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美術部, 1962年), 98-101 참조.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11

≪한국현대회화전≫이 열리기에 앞서 일본국제미술전과 국제판화비엔날레 등을 통

해 일본에 작품을 전시했던 작가들이 있었으나,11) 이 전시회를 계기로 일본에서의 한국

작가 전시회가 늘어나게 되어 도쿄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지는 작가들도 생겨났다.12)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1975년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이 도쿄

화랑에서 개최되었다. 나카하라가 화랑주인 야마모토 타카시와 함께 기획한 이 전시13)

는 이동황, 서승원, 박서보, 허황, 권영우 5명의 화가들이 선정되었다. 도쿄화랑은 1973

년 이우환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나, ≪한국 5인의 작가≫전 이후 정기적으로 한국

작가들의 전시회를 열었다.14)

도쿄화랑은 1970년대의 아시아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특별전 아시아시리즈 特別

展アジアシリーズ≫라는 5개의 전시를 열었다. 1972년 한국의 ≪이조시대의 영정과 민

중화전 李朝期の影幀と民衆画展≫, 1973년 네팔의 ≪탕카전 タンカ展≫, 동남아시아의

≪입체불상전 立体仏展≫, 중국의 ≪마애비탁본전 摩崖碑拓本展≫, 1979년 인도의 ≪탄

트라전(タントラ展)≫을 개최했다. 그리고 1989년의 ≪특별전시 중국현대미술 ‘지금’ 전

(特別展示 中国現代美術 「今」展)≫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현대미술을 활발히 다

루었다. ≪한국 5인의 작가≫전은 아시아 미술에 대한 도쿄화랑의 관심 속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기우라 코헤이가 디자인 한 ≪한국 5인의 작가≫전의 도록에서는 이일과 나카하

라의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는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이일은 ‘백색은 생각한다.’라는 문

장으로 시작하여 ‘백색은 전통적으로 한국민족과 깊은 인연이 있는 색’이며 ‘우리의 정

10) 東京国立近代美術館60年史(東京: 東京国立近代美術館, 2012年), 346.

11) 1966년 제5회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에는 김종학, 유강렬, 윤명로가 출품하였다.

12) 1970년 토키와화랑에서 ≪한국청년작가 6인선발전≫이 개최되었다. 1972년 깅화랑에서는 ‘하종현’, 무라

마츠화랑에서 ‘서승원’, 사이토화랑에서 ‘심문섭’, 73년 무라마츠화랑에서 ‘박서보’, 74년 깅화랑에서 ‘이우

환’의 작품전이 열렸다.

13) Joan Kee,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3), 234.

14) 도쿄화랑은 2010년까지 다음과 같은 작가들의 개인전을 열었다. 김창열(1976, 1983, 1988년), 이우환

(1977, 1980, 1986, 1989, 1993, 1995, 1999년),김환기(1977년), 박서보(1978, 1986, 1994, 1998, 2000

년),윤형근(1978년), 김익영(1983년), 심문섭(1985, 1989, 1993, 1999년),이강소(1990, 2000년), 이명미

(1993년), 정창섭(1994년), 서승원(1999년), 최명영(2000년), 김태호(2000년), 고명근(2006년). 그룹전은

다음과 같다. ≪한국현대미술전(김창열, 박서보, 윤형근, 이우환, 정상화, 이동황)≫(1983년), ≪한국의

4인(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1988년), ≪한국현대작가 정창섭, 김창렬, 박서보 도판작품전≫

(1996년). 2000년대에 들어서 중국현대미술 전시가 증가하기까지 도쿄화랑은 해외미술로서 한국현대미

술을 가장 빈번히 다루었다. 東京画廊六十年(東京:東京画廊, 2010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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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인 기상을 상징하는 의미이다.’라고 서술하였다. 그는 백색의 전통적·민족적인 의

미를 강조하며, 이것을 다섯 작가의 작품이 한국 전통과 민족이 관련된 것으로 특징지

었다.15)

반면, 나카하라는 전통과 민족을 관계 짓는 것에 대하여 강하게 피하는 듯 보인다.

나카하라는 한국미술의 특징을 논할 때, 이점을 유보하였다. 그는 ‘어느 나라이건 오늘

날 한 국가의 현대회화를 요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것처럼 한국현대회화 전반의

특징을 요약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고 기술하였다.16)

그러나 그는 의견을 유보하는 가운데, 2회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여 화가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중간색을 사용한 섬세한 화면’이 인상적이며 이것은 단순한 ‘화면의 조형적 기

교’를 넘어선 ‘한 회화사상의 표현’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전시에 참여한

5명의 화가들에게 ‘개인적인 차이를 넘어선 공통성’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백색’이 작

품을 결정짓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이후에도 “‘백색’이 한국 미술에

있어서 얼마나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나는 아는 바가 없다.’라고 다시 한번

의견을 유보하며, 다섯 화가의 작품을 한국 전통과 결부 짓는 것을 피하고 있다.

나카하라는 ‘백색’은 ‘색채를 계산한 끝의 흰 화면, 또는 형태를 배제한 극한의 흰 공

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미국의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

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말한 회화의 모더니즘 논의일 것이다. 그린버그의 모더

니즘은 회화의 비본질적인 요소를 배제한 환원주의적 사상이다.17) 나카하라의 주장은

명시적인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의 회화는 미국의 환원주의적인 모더니즘과는 다

른 것이라고 함축된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나카하라가 약간의 독특한 말투로 백색이란 ‘비전의 모태,’ ‘현상의 생

성과 소멸의 모태’이며 ‘시간을 잉태한 것’이라고 표현한 점이다. 이것은 외견상으로는

15) 李逸, 「白色は考える」, 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東京:東京画廊, 1975年). 미네무라

토시아키와 나카무라 케이지도 단색화를 한국의 전통, 민족과 연결하고 있다. 町[峯村敏明], 「民族的

表現のとらえ直しに真剣な韓国画壇」, 朝日ジャーナル, 第18巻第30号(1976年7月30日): 71; 中村敬

治, 「緊張のなかの安らぎ 豊かな感性溢れる韓国現代美術」, 美術手帖, 第496号(1982年5月): 175.

16) 中原佑介, 「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 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東

京: 東京画廊, 1997年). 이러한 주장은 전시회 이전부터 있었다. 中原佑介, 「見てきた韓国の現代美術

」, 美術手帖, 第367号(1973年5月): 10-11.

17) Clement Greenberg, “Modernist Painting”(1960) in Modernism with a Vengeance, 1957-1969, vol. 4

of The Collected Essays and Criticism, ed. John O’Bria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85-93.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13

이일이 백색을 ‘스스로 구현한 모든 가능성의 장’으로 보는 것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나

카하라는 이일과 달리 한국의 전통과 민족을 연결하지 않고 위와같이 서술하였다

Ⅳ.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이러한 나카하라의 생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나카하라가 말하는 ‘모태’를

다양한 것으로 생산해내는 기반으로서 생각하면, 미국의 미술사가 레오 스타인버그(Leo

Steinberg)가 언급한 ‘플랫베드 회화’의 논의를 떠올릴 수 있다. 다른 기준 Other

Criteria에서 스타인버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50년경, 회화에―(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특히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뒤뷔페 작품에

서 현저하게 나타나는데―어떤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전과 다름없이 그들의 회화를 벽

에 걸고 있다. …… 그러나 이들 회화는 더 이상 수직의 장이 아닌, 불투명하고 수평적인

플랫베드(flat bed)를 닮아간다. …… 그러므로, 그 플랫베드의 화면이 상징적으로 암시하

는 것은 테이블 상판이나 작업실 바닥, 도면, 혹은 게시판처럼 딱딱한 면이다. 수용기로

서의 면 위에는 여러 것들로 꾸며져 데이터가 기입된다. 또한 이것은 정보를―정리되어

있든지 혼돈의 상태든지 간에―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정보가 그 위에 인쇄되어

각인될 경우 또한 있을 것이다.18)

스타인버그가 말하는 ‘플랫베드 화면’은 환원주의적인 시각에서 회화의 본질로서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미술 비평을 비판한 주장으로 이것은 단순히 회화에 있어

서 화면의 다양성을 평가한 것은 아니다. ‘플랫베드 화면’이란 서로 다른 질서에 속하는

사물을 병치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작업대(work-surface),’ ‘정보의 모태(matrix of

information)’이자,19) 새로운 종류의 회화평면을 다룬 이론이었다.

흥미롭게도 스타인버그는 플랫베드 화면을 예로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숫자가 있는

백색 회화 White Painting with Numbers>(1949)을 들었다.20) 반면, 나카하라가 이후 백

18) レオ·スタインバーグ, 「他の批評基準」(林卓行訳), 美術手帖, 第738号(1997年3月): 180-181; Leo

Steinberg, “Other Criteria,” in Other Criteria: Confrontations with Twentieth-Century Art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2), 84.

19) Steinberg, “Other Criteria,” 85.

20) 이 작품은 오늘날 <22 백합과 같은 흰색 22 The Lily White>(1950년 경)로 불린다.

14

색회화의 역사를 논할 때,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라우센버그를 한국의 단색화와 함께 논

한 것을 고려해보면,21) ‘비전의 모태’로서의 한국의 단색화와 ‘정보의 모태’로서의 플랫

베드 화면 사이의 병치관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카하라는 한국의 단색화를 한국

전통, 민족과 연결짓기 보다는 이를 스타인버그의 플랫베드 화면과 비교하여 회화의 구

조적인 문제를 탐구 하고자 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22)

여기서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나카하라가 실제로 스타인버그의 논고를 읽고 단

색화를 플랫베드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색화에 대한 나카하라의 관심이 라우

센버그의 백색회화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주장은 더욱 아니다. 필자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단색화에 대한 나카하라의 논의가 플랫베드 화면에 관한 스타인버그의 논의와 논

리적으로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나카하라가 단색화를 플랫베드 화면과 비

교했을 가능성으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평면회화로서 보았다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바이

다. 권영우의 회화에서 찢어진 종이가 가지는 음영의 얼룩, 박서보의 회화에서 완전히

마르지 않은 물감 사이를 가로지르는 연필 선이 어우러져 화면 전체로 퍼져나간다. 여

기서 나카하라는 “‘백색’의 모태로부터 무엇인가가 생성되기 시작하는 원시적인 광원”을

보았다. 나카하라는 단색화의 백색이 공백의 타블라 라싸가 아닌 어떠한 것―단색화 대

부분의 경우가 형태이지만―이 생겨나는 모태라고 여겼다. 필자는 이것을 ‘정보의 모태’

로서 플랫베드 화면의 논의와 연결하여 논하고자 한다.

나카하라의 논의는 보다 이론적인 차원에서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담론, 형상 Discours, figure(1971년)의 모태(matrix) 논의와 연결 지을 수

있다. 리오타르는 담론의 영역과 다른 ‘형상(figure)’ 영역을 고찰하였는데, 여기서 형상

을 ‘이미지(image),’ ‘형식(form),’ ‘모태(matrix)’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눈에 보이는 ‘이

미지,’ 가시적이지만 평상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형식,’ 그리고 그 밑의 비가시적인 질서

로서 ‘모태’인 세 가지가 존재한다.23) 리오타르가 생각한 모태는 프로이트적 의미의 무

21) 中原佑介, 「現代美術の白と黒」, 現代の 「白と黒」(浦和: 埼玉県立近代美術館, 1986年), 201-203. 나카

하라는 백색의 회화를 ‘해외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이단아, 또는 일탈’로 보는 것이 많았음을 설명한다.

또한, 라우센버그가 흑색의 회화를 그릴 때마다 사용한 캔버스 위의 신문지가백색 회화에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22) 스타인버그의 논고는 1972년 3월 아트포럼 Artforum에 “Reflections on the State of Criticism”으로 발

표되고, 같은 해 다른 기준 Other Criteria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되어 단행본에 수록되었다. Leo

Steinberg, “Reflections on the State of Criticism,” Artforum 10, no. 7 (March 1972): 37-49. 내용이 대

폭 개정된 논고는 다음과 같다. Steinberg, “Other Criteria,” 55-91.

23) ジャン゠フランソワ·リオタール, 言説, 形象(ディスクール, フィギュール). 合田正人監修, 三浦直希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15

의식에 속하는 것으로 억압받는 배후에서 비가시적으로 작동하는 일차적 과정의 형식이

다. 그러나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주장한 것처럼 무의식의 구조가 여러 항의 대립

으로 이루어진 체계인 반면, 모태는 완전한 차이로 담론이나 표상을 구성하는 거리에 대

한 침범이라 기술한다.

리오타르의 모태를 현대미술의 맥락으로 재해석한 학자가 로잘린드 크라우스

(Rosalind E. Krauss)다. 시각적 무의식 The Optical Unconscious(1993), 그리고 이브

-알랭 부아와 공동 저술한 비정형 Formless(1996)에서 리오타르가 무시간적인 것으로

논의한 모태 개념에 리듬과 펄스의 반복적인 시간의 작동을 파악해냄으로써 크라우스는

모태를 재정의하고 비정형의 작동 방식과 연결 짓는다.24)

도쿄화랑에서 전시된 단색화를 플랫베드 화면의 회화로서 보고, 더 나아가 모태의

시점에서 고찰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전의 모

태,’ ‘현상의 생성과 소멸의 모태,’ ‘시간을 잉태한 것’으로서의 흰색이라는 시점은 색채의

경향만이 아닌 인식 상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이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타

인버그와 리오타르의 논의라는 이론적인 보조가 필요하며, 유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 나카하라의 고찰은 단순히 5명의 한국 작가들 사이에서 나타난 색채상의 공

통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색화가 가진 이론적인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자

한 것으로 이러한 점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Ⅴ.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

나카하라가 한국현대미술의 동향에 대해 쓴 중요한 논고 중 하나는 1977년 도쿄센

트럴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의 도록에 실린 글이다. 나카하라는

다음과 같이 글을 시작한다. “한국의 한 무리의 미술가들은 특히 그 평면적인 작품에 있

어서 오늘날 지극히 특징적인 동향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5)

訳(東京: 法政大学出版局, 2011年), 417-420, 514-515; Jean-François Lyotard, Discours, figure (Paris:

Paris: Klincksieck, 1971).

24) Rosalind E. Krauss, “The Im/Pulse to See,” in Vision and Visuality, ed. Hal Foster (Seattle: Bay Press,

1987), 63-66; Krauss, The Optical Unconscious (Cambridge, M.A.: The MIT Press, 1993), 217-222;

Krauss, “Isotropy,” in Formless: A Users Guide, ed. Yve-Alain Bois and Krauss (New York: Zone,

2000), 103-108.

16

나카하라는 ‘한 무리의 미술가들’이라는 말을 글의 뒷부분에서도 괄호를 붙여 반복적

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일본의 3대 미술비평가 중 한 사람인 토노 요시아키가 미

국사 연구자인 나카야 켄이치(中屋健一)와 공동 번역한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의 저서 새로운 것의 전통 The Tradition of New에 수록된 ‘미국의 액션

페인터스’의 유명한 한 구절을 상기시킨다. “어느 날, 한 무리의 미국 화가들에게 캔버스

가 실제 또는 상상의 대상을 재생, 재현, 분석하며 혹은 ‘표현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오

히려 행위의 장으로서 격투기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야

말로 그림(picture)이 아닌, 사건(event)이었다.”26)

로젠버그가 ‘한 무리의 미국 화가들’을 논하면서 “이 새로운 회화는 하나의 유파를

형성해서는 안 된다”고 서술했듯, 나카하라 또한 마찬가지로 ‘한 무리의 미술가들’을 그

룹으로 인정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리고 1975년의 도쿄화랑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을 민족 또는 전통과 연결시키는 것에 신중을 기하

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한국 미술가에게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특징

이 한국 회화에 역사적으로 잠재해 있던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서술한다.

나카하라는 이렇듯 유보의 여지를 남겨두면서도27) 그들에 대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려져야 할 바탕으로서 평면이 있고, 그 위에 어떤 재료를 가지고 그리는 것

이 아니라, 이들 미술가들에게 뚜렷한 것은 천이나 종이를 바탕으로서 다루지 않는 태도

이다.”28)

나카하라는 회화의 평면을 전제로 하며 그 위에 그려진 것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닌,

평면자체를 고찰한 부분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찾았다. 또한, 나카하라는 그들이 ‘평면상

의 그래픽적인 표시로서 회화를 규정하는 것이 아닌, 표시된 평면으로서 회화를 규정한

다는 회화관’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평면상의 표시’보다 ‘평면’그 자체를 고찰

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25) 中原佑介, 「無題」, 韓国·現代美術の断面(東京:東京セントラル美術館, 1977年).

26) ハロルド·ローゼンバーグ, 新しいものの伝統. 東野芳明·中屋健一訳(東京:紀伊國屋書店, 1965年),

23; Harold Rosenberg, “American Action Painters,”(1952) in The Tradition of the New (New York:

Horizon Press, 1959), 25.

27) 이렇듯 거듭되는 유보는 나카하라가 단색화를 한국 민족, 전통과 연결 짓고자 하는 유혹에 휩싸여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28) 中原, 「無題」, 韓国·現代美術の断面.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17

여기서 나카하라가 예로 든 것이 나무 액자에 팽팽하게 붙인 천의 표면을 사포로 문

지르고 흠집을 낸 심문섭의 작품과 작품에 천이라는 재료가 빠져서는 안 되는 윤형근의

회화이다. 또한, 물방울을 그린 김창열의 작품도 어떤 것에 물방울이 부착된 장면을 재

현하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 자체에 물방울이 부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역

시나 평면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75년의 논의와 비교하여 1977년의 나카하라의 주장은 평면성을 지향하는 모더니

즘의 본질주의적인 논의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논의는 회화의

본질로서 평면이 아닌, 다양한 요소가 교차된 장으로서의 평면을 문제삼고 있다는 점에

서 그린버그적인 모더니즘과는 상이하다. 나카하라는 김용익에게 있어서의 시트와 권영

우에게 있어서의 신문지와 같은 비회화적인 요소가 두 사람의 회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윤형근의 천을 사용한 방법이 공예적이라고 한 지적 또한

비회화적인 요소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1976년 김창열의

개인전에서 물방울의 일루전과 천의 물질성이라는 ‘복합성’에 주목하고,29) 1978년 박서

보의 개인전에서는 드로잉과 페인팅의 ‘갈등’을 지적한다.30) 이것은 모두 복수의 요소가

교차된 장으로서의 평면을 문제로 다루고 있다. 나카하라는 하나의 회화적 본질에 대해

모더니즘의 환원주의적인 과정이 아닌, 회화를 구성하는 복수의 요소가 교차하는 구조

에 관심을 가졌다. 이렇듯 나카하라의 논의는 일관되게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를 추구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31)

Ⅵ. 나가며

본고에서는 나카하라의 한국현대미술론에 대해 고찰하였다. 특히 1975년 도쿄화랑

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과 1977년 도쿄 센트럴미술관에서 열

린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의 도록에 실린 나카하라의 글에 주목하였다. 그는 다

29) 中原佑介, 「金昌烈」, 金昌烈(東京: 東京画廊, 1976年).

30) 中原佑介, 「朴栖甫」, 朴栖甫(東京: 東京画廊, 1978年).

31) 1983년 도쿄도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현대미술전≫에 대해 나카하라는 단색화 작품은 “화면의 물질성

그 자체를 작품형성의 근본적인 요소로 다루려 한다.” 고 기술하였는데, 이러한 시점으로부터 해석되어

야 할 것이다. 中原佑介, 「独自性の強い白, 単色 韓国現代美術展」, 毎日新聞, 1983年7月1日夕刊, 7.

18

른 논자와 달리, 단색화를 한국의 전통, 민족과 연결짓는 것을 피하고 스타인버그의 플

랫베드화면과 리오타르의 모태를 병행하는 이론적 의미로 다루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나카하라는 어떻게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현대미술에 매료 당한 것인가. 1970년 초

까지 계속된 과격한 전위미술 운동이 진정되고 미술의 기본으로 되돌아 가고자 했을 때,

그는 단색화와 만났다.32) 1972년,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1970년대 초에 썼던 비평을

보는 것의 신화 見ることの神話와 인간과 물질 사이: 현대미술의 상황 人間と物質の

あいだ 現代美術の状況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정리하여 출간했다.33) 그 후, 1962년 출

간한 첫 저서인 넌센스의미학 ナンセンスの美学의 개정판인 넌센스 예술론 ナンセ

ンス芸術論을 출간하며,34) 과거 자신이 해온 일을 돌이켜보고, 70년대 전후의 미술계

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쓴 글을 정리하였다. 나카하라는 동시대 미술의 동향에 관

여하는 것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고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바로 잡으려 했다. 이후

에 출판된 그의 저서 대부분은―대발명이야기 大発明物語(1975), 현대예술입문 現

代芸術入門(1979), 현대조각 現代彫刻(1982년, 개정판 1987년) 등35)―예술을 원리적

으로 다루고 하였다. 이후, 동시대 미술의 동향을 중심적으로 논한 논문집이 출간되는

일은 없었으며, 동시대 미술에 대해 집필하는 기회도 줄었다. 이렇게 그의 관심이 추이

되는 과정 속에서 회화의 기본적인 것을 바로 세우고자 한 한국 단색화는 나카하라에게

큰 시사점을 주는 하나의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나카하라는 1977년의 글 마지막 부분에서 한국의 현대회화에 대해 “‘한국의’라는 수

식어에서 벗어나, 현대회화를 검토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기술했다.36)

그는 단색화를 한국의 독자적인 동향이 아닌, 보다 보편적인 회화의 문제를 고찰하는 한

무리의 화가들의 활동으로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한 지역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같은 해 나카하라는 한국 미술가들과 함께 ‘회화에서의 유럽적인 것과 비

32) 일본에도 이와 같은 동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와 호리코우사이

와 히코사카 나오요시의 회화작품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33) 中原佑介, 見ることの神話(東京: フィルムアート社, 1972年); 同, 人間と物質のあいだ 現代美術の状況(東京: 田畑書店, 1972年).

34) 中原佑介, ナンセンスの美学(東京: 現代思潮社, 1962年); 同, ナンセンス芸術論(東京: フィルムアート社, 1972年).

35) 中原佑介, 大発明物語(東京: 美術出版社, 1975年); 同, 現代芸術入門(東京: 美術出版社, 1979年); 同,

現代彫刻(東京: 美術出版社, 1982年; 改訂新版1987年).

36) 中原, 「無題」, 韓国·現代美術の断面.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19

유럽적인의 문제’를 다룬 중요성을 지적하며,37) 1978년에는 “박서보를 비롯한 한국의 미

술가들에게 비유럽적인 것을 느낀다”고 서술하였다.38) 흥미로운 점은 나카하라가 적극

적으로 ‘한국적인 것’과 ‘아시아적인 것’을 다룬 것이 아니라 ‘비유럽적인 것’이라는 부정

에 따라 규정된 지역성을 논했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중심의 미술사를 상대할 때, 아시

아 미술 등의 대항적인 개념을 내세우는 것에 진중했으며, 이것이 유럽미술이라는 개념

뒤집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의견이 지역과

완전히 관계 없는 보편적인 미술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다.39) 보편성은 유럽미술이 만

들어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카하라는 “유럽 미술계가 긴 시간 동안 아시아 각국을 비

롯한 비유럽 지역들의 미술을 무시해온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보편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40) 그는 지역을 넘어선 문화의 특수성과 다

양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술의 (유럽적인) ‘보편성’의 재고를 촉구하고 있

다. 이 때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회화의 일반적인 문제를 고찰해 온 한국 단색화의 역할

은 적지 않을 것이다. 단색화와 그에 대한 담론의 가능성을 고찰하고, 세계적인 미술사

속에서 정당한 위치를 찾는 것이 현재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번역: 박준영, 콘노유키)

주제어(Keywords)

일본 미술비평(Art Criticism in Japan), 미술 이론(Art Theory), 한국 현대미술(Contemporary Art in Korea),

단색화(Dansaekhwa), 이일(Lee Yil),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나카하라

유스케(Nakahara Yūsuke), 레오 스타인버그(Leo Steinberg)

(투고일 2016년 1월 20일 | 심사일 2016년 7월 10일 | 게재확정일 2016년 7월 27일)

37) 中原佑介, 「現代美術へアピールする一群 「韓国·現代美術の断面」展」, 美術手帖, 第424号 (1977年9

月), 125頁.

38) 中原, 「朴栖甫」.

39) 다음 문장은 ‘세계의 보편적인 미술이라는 것이 상정되어야만 하는 것인가’라고 서술한다. 中原佑介, 「展

覧会によせて」, 韓国現代美術の位相展(京都: 韓国京都青年会議所, 1983年). 그러나 이후의 이러한

생각을 전개한 행적은 찾을 수 없다.

40) 中原佑介, 「普遍的な 「アジア美術」はない 特殊·多様性に焦点を当てて」, 読売新聞, 1995年1月6日夕

刊,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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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23

국문초록

본 논문은 한국 현대미술, 특히 단색화에 관한 일본 미술비평가 나카하라 유스케의

글을 고찰한다. 나카하라는 1970년대 초반에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고

많은 글을 저술하였다. 그는 또한 1975년 동경 화랑에서 개최되었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과 1977년 동경 센트럴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과 같은 단색화 전시를 마련하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이 전시들은 한국 단색화

작가들을 일본에 소개할 뿐 아니라, 흰색으로 작업하는 일군의 화가들을 특징짓는 데에

도 중요했다.

본 논문은 나카하라가 저술한 전시 도록의 글을 토대로, 그가 단색화를 통상적으로

한국의 전통과 종족성에 결부시키는 것을 피하고자 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보다는

본 논문에서는 나카하라의 입장을 레오 스타인버그가 제시한 플랫베드 화면이라는 개념

과 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제시한 모태의 개념에 비교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나카하라가 한국 모노크롬 회화 화면의 새로운 다양성의 가능성을 찾았던 방식을 고찰

한다. 즉, 이는 회화의 환원적이고 모더니즘적인 개념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형태와 비

전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하나의 모태로서 간주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러한 논의의

예시에는 종이를 찢고 긁어 만든 권영우 작업과 캔버스 전면을 연필선으로 채운 박서보

의 작업이 포함된다. 본 논문은 또한 1950년대 중반에 미술비평가로서 등단한 이래로

현대미술비평 활동에 주력했던 나카하라가 1970년대 중반에 단색화를 접한 것을 계기로

하여 예술에 대한 보다 확장된 성찰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게 된 비평가로서의 전환점을

가졌음을 살펴본다.

24

Abstract

Dansaekhwa as Flatbed Picture Plane: Nakahara

Yūsuke’s Perception of Korean Contemporary Art

Kajiya, Kenji (The University of Tokyo)

This article investigates Japanese art critic Nakahara Yūsuke’s writings about

Korean contemporary art, especially Dansaekhwa. Nakahara developed an interest in

contemporary Korean art in the early 70s and wrote many articles about the topic.

He was also involved in organizing exhibitions on Dansaekhwa like “Five Korean

Artists, Five Kinds of White,” held at Tokyo Gallery in 1975, and “Korea: A Facet of

Contemporary Art,” held at Tokyo Central Museum of Art in 1977. These exhibitions

were important not only for introducing Korean Dansaekhwa artists to Japanese, but

also for characterizing them as a group of painters who worked with white.

Through analysis of Nakahara’s catalogue essays, this article argues that

Nakahara avoided the common association of Dansaekhwa with Korean tradition and

ethnicity. Instead it explores readings paralleling Leo Steinberg’s idea of the flatbed

picture plane and Jean-François Lyotard’s concept of the matrix. This article looks at

how Nakahara found the possibility of a new variety of picture plane in Korean

monochrome paintings, one that does not derive from a modernist, reductive idea

of painting, but rather can be identified as a matrix in which forms and visions

appear and disappear. Examples include Kwon Young-woo’s works on torn and

scratched paper and Park Seo-bo’s paintings with all-over pencil lines on canvas.

This article also shows that Nakahara’s encounter with Dansaekhwa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critic’s shift in the mid-1970s from contemporary art reviews,

which he had devoted himself to since his debut as an art critic in the mid-1950s,

to more expansive contemplations on art, which he would continue throughout the

rest of his life.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25

フラットベッド画面としての単色画 

中原佑介の韓国現代美術論

加治屋健司 (東京大學)

はじめに

本稿の目的は、日本の美術批評家・中原佑介の韓国現代美術論を考察するこ

とである。中原は、1972年に初めて韓国を訪れて以来、何度も訪韓し、韓国の

現代美術を日本で紹介することに携わった。1975年に東京画廊で開かれた「韓

国・5人の作家 5つのヒンセク〈白〉」展、そして、1977年に東京セントラル美

術館で開かれ19名の韓国の作家を紹介した「韓国・現代美術の断面」展といっ

た展覧会の企画に関わる一方で、韓国出身で日本で活動する李禹煥を含め、朴

栖甫、尹亨根、河鍾賢などの韓国の作家が日本で個展を開いた際に展覧会カタ

ログなどに文章を寄せた1)。中原以外の日本の美術批評家も、韓国の作家につい

* 本稿の執筆にあたり、弘益大学校の鄭然心、朴ジュンヨンの両氏には、中原佑介に関する韓国語

の文献を調査していただきました。調査・執筆の過程で、金英那、ジョアン・キー、光田由里の

各氏に貴重なご意見、ご協力をいただきました。ここにお礼申し上げます。本稿は、2016年6月

11日、西洋美術史学会と韓国美術史学会が韓国芸術総合学校で開催した美術史学大会のシンポジ

ウム「韓国美術のアイデンティティ 過去と現在」で発表した原稿「中原佑介の韓国」が元に

なっている。シンポジウムでご意見やご質問をしてくださった方々にも感謝いたします。

1) 中原が韓国美術を論じた論考は30を超える。書誌情報は以下を参照。加治屋健司, 「中原佑介の

韓国美術論書誌」, http://www.academia.edu/27533007/(2016年8月5日閲覧).なお、2016年2月

にDIC川村記念美術館で開かれた「美術は語られる 評論家・中原佑介の眼」展には、李禹煥の

《刻みより》(1972年頃)、《遺跡地にて3》(1984年)、《風より》(1986年)に並んで、朴

栖甫の描法シリーズ(1977年)、尹亨根《UMBER-BLUE ‘77》(1977年)、沈文變《現前7841》(1978年)が展示されていた。李の《風より》以外は、中原の個人コレクションの作品であ

る。1978年4月に、中原、尹、沈、朴、白田貞夫、金丘林と韓国・馬耳山で撮影した写真も2点

展示されていた。

26

て書いてきたが、中原が韓国の作家を論じる機会は突出して多かった2)。中原は

韓国の現代美術にどのような関心を抱いたのだろうか。それは中原の美術批評

の中でどのような位置を占めていたのだろうか。本稿では、まず、上記の展覧会に至るまでの中原の美術批評家としての活動を概観した上で、中原にとって

の韓国美術の意味を考察する。とりわけ、中原が企画に携わった「韓国・五人

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展と「韓国・現代美術の断面」展における中原

の議論を中心に考察し、中原が韓国現代美術にどのような理論的な問題を見出

していたかを論じたい。

1.中原佑介の主な活動 「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展の企画まで

20世紀後半の日本には、現代美術の発展に大きく貢献した美術批評家が3人

いた。針生一郎、東野芳明、中原の3人である。彼らは美術批評の「御三家」と

呼ばれ3)、針生は政治的な視点、東野は文学的な文体、中原は論理的な思考の美

術批評で知られた。3人は、それぞれの特徴を活かした美術批評を展開し、1950

年代半ばから70年代までの日本の現代美術を領導することになった。

中原は、京都大学理学部物理学科を卒業後、1953年に大学院に進学して、

ノーベル物理学賞を受賞した湯川秀樹のもとで理論物理学を専攻した。修士論

文を執筆する傍らで書いた「創造のための批評」が、美術出版社が行っていた

美術評論募集の第1席となり、55年から美術批評家として活動するようになっ

た。

デビュー作の「創造のための批評」は、中原の批評家としての考えを表明す

るものだった。中原は、「批評は作家の創造の秘密を説明するにとどまらず、

2) ただし、峯村敏明も韓国現代美術について数多く論じており、その数は20を超える。書誌情報は

以下を参照。加治屋健司, 「峯村敏明の韓国美術論書誌」, http://www.academia.edu/27533381/(2016年8月5日閲覧).

3)「御三家」とは、江戸時代の徳川将軍家の3つの有力な分家を意味する言葉で、ある分野の有力

な3者を指すのにしばしば用いられる。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27

それを変革するための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説き、批評とは、作家の制

作に影響を与える能動的な活動であるべきだと主張した4)。そして実際に、中原

は実践的な批評を目指して、同時代の日本美術について盛んに論じた。とりわ

け1950年代後半から1960年代前半まで、読売新聞、『美術批評』、『美術手

帖』といった新聞や雑誌に数多くの展覧会評を書き、いくつかの作家論を上梓

し、現代日本美術の状況に関する考察を発表した。

それに加えて、中原は、作家と直接、対話・交流することにも積極的だっ

た。中村宏との往復書簡をしたためたり5)、宮川淳や石子順造といった批評家だ

けでなく、作家の池田龍雄や高松次郎をも巻き込んだ「影」に関する論争に関わった6)。そして中原は、60年代から70年代にかけて重要な展覧会を企画した。

1963年に内科画廊で「不在の部屋」展を企画し、高松、中西夏之、赤瀬川原平

などを選び、1968年には東京画廊と村松画廊で「トリックス・アンド・ヴィ

ジョン」展を石子順造と共同で企画し、高松、関根伸夫、鈴木慶則、飯田昭二

などを取り上げた7)。

中でも重要な展覧会は、1970年に開催された第10回日本国際美術展(東京ビ

エンナーレ)であろう8)。この展覧会は、東京都美術館、京都市美術館、愛知県

4) 中原佑介, 「創造のための批評」, 『美術批評』, 第41号(1955年5月): 6[『創造のための批評 

戦後美術批評の地平』(中原佑介美術批評選集第1巻, 東京: 現代企画室+BankART出版、2011年), 11に再録].

5) 中原佑介・中村宏, 「《観光芸術》問答 往復書簡による」, 『美術手帖』, 第270号(1966年7月): 34–37[中原の文章は「「観光芸術」問答 「美術の中の4つの『観光』」展」として以下

に採録。『前衛のゆくえ アンデパンダン展の時代とナンセンスの美学』(中原佑介美術批評選

集第3巻, 東京: 現代企画室+BankART出版, 2012年), 195–198].

6) 影論争における中原の文章については、以下を参照のこと。加治屋健司, 「解題」, 『前衛のゆ

くえ』, 303–304.7)「不在の部屋」展については、上記の拙論及び黒川脩一・宮田有香編, 『内科画廊  ’60年代の前

衛』(京都: 京都造形大学京都芸術短期大学芸術館, 2000年)を参照。「トリックス・アンド・ヴィジョン」については以下を参照。成相肇, 「「トリックス・アンド・ヴィジョン展 盗まれ

た眼」について  最近の調査から」, 『府中市美術館研究紀要』,第15号(2011年3月): 23–47; 同, 「「トリックス・アンド・ヴィジョン展」研究追補および石子順造関連文献目録補遺」, 『府中市美術館研究紀要』, 第17号(2013年3月): 9–20.

8)「人間と物質」展については以下の文献を参照。展覧会カタログの『第10回日本国際美術展

tokyo biennale 1970 人間と物質 between man and matter』(東京: 毎日新聞社, 1970年)及び同

報告集、渡部葉子, 「「非常な冒険」の展覧会 東京ビエンナーレ’70再考」, 『東京府美術館の

時代 1926–1970』(東京都: 東京都現代美術館, 2005年), 150–152; 『「人間と物質」展の射程 

日本初の本格的な国際展』(中原佑介美術批評選集第5巻, 東京: 現代企画室+BankART出版, 2011年); 慶應義塾大学アート・センター編, 『東京ビエンナーレ’70再び』(東京: 慶應義塾大

28

文化会館(現・愛知県美術館)、福岡県文化会館(現・福岡県立美術館)を巡

回した。コミッショナーを務めた中原は、「人間と物質」をテーマに掲げ、海

外から27名、国内から13名の合計40名の作家を選んだ。この展覧会は、1969年

のハラルド・ゼーマンによる「態度が形になるとき(When Attitudes Become

Form)」展(ベルン・クンストハーレ)や、ヴィム・ベーレンによる「ゆるん

だネジの上(Op Losse Schroeven)」展(アムステルダム市立美術館)などと同

じく、ミニマル・アート、プロセス・アート、コンセプチュアル・アート、ア

ルテ・ポーヴェラなどを含む、新しい美術の動向を紹介する画期的な展覧会だった。この展覧会の後に中原が企画に携わったのが、1975年に東京画廊で開

かれた「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展である。

2.日本における韓国現代美術と「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展

東京画廊の展覧会について検討する前に、日本で韓国の現代美術がどのよう

に紹介されてきたかを見ておこう。1950年代から60年代前半にかけて、日本美

術会などの美術団体の展覧会には、在日朝鮮人の画家が出品しており、郭仁植

や曺良奎のように高い評価を得る者もいた9)。しかし、韓国で活動する美術家の

本格的な紹介は、1965年の国交正常化の3年後、1968年7月から9月にかけて東京

国立近代美術館で開催された「韓国現代絵画展」まで待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

た。この展覧会は20人の作家による78点の絵画を展示し、当時としては標準的

な会期であった39日間に8220人が来場した10)。

学アート・センター, 2016年)。本展覧会は、戦後日本美術史において非常に重要な展覧会であ

るにもかかわらず、国外では十分に知られていない。例えば、1966年から72年までのコンセプ

チュアル・アートに関する情報をまとめたルーシー・リッパードの本には、展覧会の概要や出

品作家の名前は掲載されているものの、コミッショナーである中原の名前が抜けている。Lucy Lippard, Six Years: The 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 from 1966 to 1972 (New York: Praeger, 1973), 165.

9) この時期の在日朝鮮人の画家の活動については、「在日本朝鮮美術家たちの歩み」, 白玲編, 『在日朝鮮美術家画集』(東京: 在日本朝鮮文学芸術家同盟美術部, 1962年), 98–101を参照。

10)『東京国立近代美術館60年史』(東京: 東京国立近代美術館, 2012年), 346.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29

「韓国現代絵画展」が開かれる前から、日本国際美術展や東京国際版画ビエ

ンナーレ展などの機会に日本で作品を展示した作家はいたが11)、この展覧会を

きっかけとして日本での韓国の作家の展覧会が増えていき、東京の画廊で個展

を行う作家も出てくるようになった12)。

「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展は、こうした歴史的な文脈

の中で、1975年に東京画廊で開かれた。これは、中原が画廊主の山本孝ととも

に企画した展覧会で13)、李東熀、徐承元、朴栖甫、許榥、権寧禹の5人の画家が

取り上げられた。東京画廊は、1973年に李禹煥の個展を開いていたが、「韓

国・五人の作家」展以後、定期的に韓国の作家を取り上げるようになった14)。

東京画廊は、1970年代にアジア美術に関心をもち、「特別展アジアシリーズ」として5つの展覧会を開いている。1972年に韓国の「李朝期の影幀と民衆画展」、1973年にネパールの「タンカ展」、東南アジアの「立体仏展」、中国の

「摩崖碑拓本展」、1979年にインドの「タントラ展」を開催した。1989年の

「特別展示 中国現代美術「今」展」以後、とりわけ2000年代には中国現代美術

も盛んに取り上げるようになった。「韓国・五人の作家」展は、アジア美術に

対する東京画廊の関心の中で考える必要がある。

杉浦康平デザインによる「韓国・五人の作家」展のカタログには、李逸と中

原が対照的な文章を寄せている。李は「白色は考える」と題した文章で、「白

11) 1966年の第5回東京国際版画ビエンナーレには、金宗学、劉康烈、尹明老が出品している。

12) 1970年にはときわ画廊で「韓国青年作家6人選抜展」が開かれた。1972年にギン画廊で「河鍾

賢」、村松画廊で「徐承元」、サトウ画廊で「沈文燮」、73年には村松画廊で「朴栖甫」、74年にはギン画廊で李禹煥作品展が開かれた。

13) Joan Kee,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3), 234.

14) 東京画廊は、以下の韓国の作家の個展を開いている(2010年まで)。金昌烈(1976年、1983年、1988年)、李禹煥(1977、1980年、1986年、1989年、1993年、1995年、1999年)、金煥基

(1977年)、朴栖甫(1978年、1986年、1994年、1998年、2000年)、尹亨根(1978年)、金益

寧(1983年)、沈文變(1985年、1989年、1993年、1999年)、李康昭(1990年、2000年)、李

明美(1993年)、丁昌變(1994年)、徐承元(1999年)、崔明永(2000年)、金泰浩(2000年)、コウ・ミョンクン(2006年)。グループ展には以下のものがある。「韓国現代美術展

(金昌烈、朴栖甫、尹亨根、李禹煥、鄭相和、李東熀)」(1983年)、「韓国の四人(朴栖

甫、尹亨根、河鍾賢、丁昌變)」(1988年)、「韓国現代作家 丁昌變・金昌烈・朴栖甫 陶

板作品展」(1996年)。2000年代に中国現代美術の展覧会が増加するまで、東京画廊は、海外

の美術としては韓国現代美術を最も頻繁に取り上げた。『東京画廊六十年』(東京: 東京画廊, 2010年)を参照。

30

色は伝統的に韓国民族とは深い因縁にある色」であり、「われわれの精神的な

気象の象徴としての意味を有している」と述べ、白色の伝統的・民族的な意味

を強調している。それによって、李は、5人の画家の作品を韓国の伝統や民族と

の関連で特徴づけた15)。

他方、中原は、伝統や民族と関係づけることを極力避けているように見え

る。中原は、韓国美術の特徴を論じる際に留保を付ける。「どの国であれ、今

日ひとつの国の現代絵画を要約することがほとんど不可能であるように、韓国の現代絵画全般の特徴を要約することもきわめて難しい」と述べている16)。

中原は、そうした留保を付けながらも、2度に渡る訪韓で画家のアトリエを

巡るうちに「中間色を用いたデリケイトな画面」に印象づけられたと述べ、そ

こに単なる「画面の造形技巧」を超えた「ある絵画思想のあらわれ」を見出し

たという。そして、この展覧会の5人の画家には「個人的な差異を越えた共通

性」が感じられるとして、とりわけ「白」が作品を決定づけていると主張す

る。ただし、そのように主張した後も、「「白」が韓国の美術において、どの

ような歴史的意義をもっているかは、私の知るところではない」と再び留保を

付けて、5人の画家の作品を韓国の伝統と結びつけることを繰り返し避けてい

る。

中原は、この「白」は「色彩を引き算していった果ての白い画面、あるい

は、かたちを排除していった極限としての白い空間」ではないと主張する。こ

こで想起されるのは、アメリカの美術批評家クレメント・グリーンバーグが唱

えた絵画のモダニズムの議論であろう。グリーンバーグのモダニズムは、絵画に非本質的な要素を排除する還元主義的な思想であった17)。中原の主張には、

15) 李逸「白色は考える」『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東京: 東京画廊, 1975年).峯村や中村敬治も、単色画を韓国の伝統や民族と結びつけている。町[峯村敏明], 「民族的表現のとらえ直しに真剣な韓国画壇」, 『朝日ジャーナル』, 第18巻第30号(1976年7月30日): 71; 中村敬治, 「緊張のなかの安らぎ 豊かな感性溢れる韓国現代美術」, 『美術手

帖』, 第496号(1982年5月): 175.

16) 中原佑介, 「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 『韓国・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

ク〈白〉』(東京: 東京画廊, 1997年).こうした主張は展覧会の前にも行っている。中原佑

介, 「見てきた韓国の現代美術」, 『美術手帖』, 第367号(1973年5月): 10–11.

17) Clement Greenberg, “Modernist Painting” [1960] in Modernism with a Vengeance, 1957–1969, vol. 4 of The Collected Essays and Criticism, ed. John O’Bria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85–93.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31

明示的な言及はないものの、韓国の絵画はアメリカの還元主義的なモダニズム

とは異なるという含意があると考えられる。

興味深いのは、中原が、やや独特な言葉遣いで、白とは「ヴィジョンの母

胎」「現象の生成と消滅の母胎」であって「時をはらんだもの」と書いている

ことである。これは一見すると、李逸が白を「みずからを具顕するすべての可

能の生成の場」と捉えているのと似ているように見える。しかし、中原は、李

と違って韓国の伝統や民族とは結びつけずにこのように述べているのである。

3.フラットベッド画面としての単色画中原のこの考え方は何に由来しているのだろうか。中原のいう「母胎」を、

様々なものを生み出す基盤と考えれば、アメリカの美術史家レオ・スタイン

バーグが唱えた「フラットベッド画面」の議論が想起される。「他の批評基

準」において、スタインバーグは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1950年頃、絵画に――(少なくとも私の経験に従えば)ロバート・ラウシェン

バーグとデュビュッフェの作品にとくに顕著なのだが――なにかが起こった。私

たちは依然として彼らの絵を壁に掛けている[…]。だがこれらの絵はもはや垂

直の場ではなく、不透明な水平のフラットベッドを擬態する。[…]したがって

そのフラットベッド画面が象徴的に暗示するものは、テーブルの天板やアトリエ

の床、図面、あるいは掲示板のような固い面となる。こうした受容器としての面

の上には種々のものがちりばめられ、データが記入される。またこの面は情報を

――整然とであろうと混沌のうちにであろうと――受けとめることもあれば、情報

はその上に印刷され、刻印されることがあるかもしれない18)。

スタインバーグが提唱する「フラットベッド画面」は、絵画の本質としての

平面性を強調するモダニズム美術批評を批判したものであるが、単に、絵画に

18) レオ・スタインバーグ, 「他の批評基準」(林卓行訳), 『美術手帖』, 第738号(1997年3月): 180–181[Leo Steinberg, “Other Criteria,” in Other Criteria: Confrontations with Twentieth-Century Art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2), 84].

32

おける画面の多様性を評価したものではない。「フラットベッド画面」とは、

異なる秩序に属する事物を並置することを可能にする「作業台(work-surfac

e)」、「情報の母胎(matrix of information)」であり19)、新しい種類の絵画平

面を提唱する理論であった。

興味深いことにスタインバーグは、フラットベッド画面の例として、ロバート・ラウシェンバーグの《数字のある白い絵画(White Painting with Number

s)》(1949年)という作品を挙げている20)。他方、中原は後年、白い絵画の歴史を論じる中で、カジミール・マレーヴィチ、ラウシェンバーグ、韓国の単色

画に触れていることを考えれば21)、「ヴィジョンの母胎」としての韓国の単色

画と「情報の母胎」としてのフラットベッド画面との間に並行関係を見出すこ

とは可能である。中原は、韓国の単色画を、韓国の伝統や民族と結びつけるよ

りも、スタインバーグ的なフラットベッド画面と比較することが可能な、絵画の構造的な問題を探究するものとみなそうとしたと考えることができる22)。

ここで私が述べているのは、中原が実際にスタインバーグの論考を読んで、

単色画をフラットベッド画面とみなしたということではない。ましてや、単色

画の白色への中原の関心がラウシェンバーグの白い絵画に由来しているなどと

主張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私が問題にしているのは、単色画に関する中原の

議論が、フラットベッド画面に関するスタインバーグの議論と論理的に並行し

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つまり、中原は単色画を、フラットベッド画面に比

することが可能な、新しい種類の絵画平面とみなしていたというのが私の主張

である。権寧禹の絵画における、破れた紙がもたらす陰影の斑点、そして、朴

19) Steinberg, “Other Criteria,” 85.20) この作品は、今日では《22ユリのような白(22 The Lily White)》(1950年頃)と呼ばれてい

る。

21) 中原佑介, 「現代美術の白と黒」『現代の「白と黒」』(浦和: 埼玉県立近代美術館, 1986年), 201–203.中原は、白い絵画が「海外の歴史という文脈の異端児、あるいはそれからの逸脱」

と見られることが多いと述べている。なお、中原は、ラウシェンバーグが黒い絵画を描く際に

用いたカンヴァス上の新聞紙が白い絵画においても使われているとしているが、事実ではな

い。

22) スタインバーグの論考は、1972年3月『アートフォーラム』に「批評の状況についての省察」と

して発表された。大幅に改訂された後、同年「他の批評基準」として同名の単行本に収められ

た。Leo Steinberg, “Reflections on the State of Criticism,” Artforum 10, no. 7 (March 1972): 37–49. Steinberg, “Other Criteria,” 55–91.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33

栖甫の絵画における、乾き切っていない絵具の間を走る鉛筆の線は、ともに画面全体に広がっている。中原はここに、「「白」の母胎からなにものかが生成

し始めた原始的な光景」を見出している。中原は、単色画の白色を、空白のタ

ブラ・ラサではなく、何らかのもの——単色画においては多くの場合かたちで

あるが——が生まれ出てくる母胎と捉えているのである。これを「情報の母

胎」としてのフラットベッド画面の議論と結びつけて論じたいというのが私の

主張である。

中原の議論は、より理論的なレベルで、ジャン゠フランソワ・リオタールの

『言説、形象』(1971年)における母胎(matrix)の議論と結びつけることも可

能である。リオタールは、言説の領野とは異なる「形象(figure)」の領野を考

察するにあたって、形象を「イメージ(image)」「形式(form)」「母胎」の

3つに分類する。目に見える「イメージ」、可視的だが通常は目に見えない「形

式」、そして、それらの下に不可視的な秩序としてある「母胎」の3つであ

る23)。リオタールが考える母胎とは、フロイト的な意味での無意識に属してお

り、抑圧の背後で不可視的に作動する一次過程の形式である。しかし、ジャッ

ク・ラカンが主張するように、無意識の構造が、諸項の対立からなる体系であ

るのに対して、母胎とは、差異そのものであり、言説や表象を構成する距離に

対する侵犯であると述べている。

リオタールの母胎を、現代美術の文脈で再解釈したのがロザリンド・クラウ

スである。『視覚的無意識』(1993年)、さらにはイヴ゠アラン・ボワとの共

著『アンフォルム』(1996年)において、リオタールが無時間的なものと論じ

ていた母胎に、リズムやパルスといった反復的な時間の作動を読み込むこと

で、クラウスは母胎を再定義してアンフォルムの操作と結びつけた24)。

東京画廊で展示された単色画を、フラットベッド画面の絵画として、さらに

23) ジャン゠フランソワ・リオタール, 『言説、形象(ディスクール、フィギュール)』合田正人

監修、三浦直希訳(東京: 法政大学出版局, 2011年), 417–420, 514–515[Jean-François Lyotard, Discours, figure (Paris: Paris: Klincksieck, 1971)].

24) Rosalind E. Krauss, “The Im/Pulse to See,” in Vision and Visuality, edited by Hal Foster (Seattle: Bay Press, 1987), 63–66; Krauss, The Optical Unconscious (Cambridge, Mass.: MIT Press, 1993), 217–222; Krauss, “Isotropy,” in Formless: A Users Guide, edited by Yve-Alain Bois and Krauss (New York: Zone, 2000), 103–108.

34

は、母胎の視点から考察することは、いささか強引であるように思われるかも

しれない。しかし、「ヴィジョンの母胎」「現象の生成と消滅の母胎」「時を

はらんだもの」としての白という視点には、色彩の傾向だけでなく、認識上の

問題も含まれている。そのことを明確に理解するためには、スタインバーグや

リオタールの議論という理論的な補助線が必要かつ有効であるように思われ

る。つまり、中原の考察は、単に、5人の韓国の作家の間にみられる色彩上の共

通性を示したものではなく、単色画が持っている理論的な可能性を明らかにす

る試みだった。その点はもっと強調されてしかるべきだろう。

4.「韓国・現代美術の断面」展

中原が韓国の現代美術の動向について書いたもうひとつの重要な論考が、

1977年に東京セントラル美術館で開かれた「韓国・現代美術の断面」展のカタ

ログに寄せた文章である。中原は次のように始めている。

韓国の一群の美術家たちは、特にその平面的な作品において、現在きわめて特徴ある動向を展開しつつあるように思う25)。

中原は、「一群の美術家たち」という言葉を、その後も括弧を付けて繰り返

して使っている。この言葉は、別の「御三家」の美術批評家であった東野芳明

が、アメリカ史の研究者中屋健一と訳したハロルド・ローゼンバーグの著作

『新しいものの伝統』に収められた「アメリカのアクション・ペインターた

ち」の有名な一節を彷彿とさせる。

あるとき、一群のアメリカの画家にとっては、カンヴァスが、実際のあるいは想

像上の対象を再生し再現し分析し、あるいは“表現する”空間であるよりもむし

ろ、行為する場としての闘技場に見えはじめた。カンヴァスの上に起こるべきも

25) 中原佑介, 「無題」, 『韓国・現代美術の断面』(東京:東京セントラル美術館, 1977年).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35

のは絵ピクチャーではなく事件

イヴェント

であった26)。

ローゼンバーグが「一群のアメリカの画家」を論じるにあたって、「この新

しい絵画は、ひとつの派を作ってはいない」と述べたように、中原も「一群の

美術家たち」をグループとみなすことを避けている。そして、1975年の東京画廊の文章と同様に、彼らに共通する特徴を民族や伝統と結びつけることに慎重

である。「こういう態度は、今日韓国の美術家にしか見られないというのでは

ない」「こうした特徴が、韓国の絵画に歴史的に潜在していたものかどうか判

断しかねる」と中原は述べている。

とはいえ、こうした留保を付けながらも27)、中原は彼らに共通する特徴を次

のように述べる。

描かれるべき地としての平面があり、その上になんらかの塗料をもって描くので

はなく、これらの美術家に著しいのは、布とか紙を地としては扱わないという態

度である28)。

中原は、絵画の平面を前提としたうえで、その上に描かれたものを重視する

のではなく、平面自体を考察しているところに共通の特徴を見出している。中

原は彼らが、「平面上のグラフィックなしるしとして絵画を規定するのではな

く、しるしづけられた平面として絵画を規定するという絵画観」をもっている

とも述べている。「平面上のしるし」よりも「平面」そのものを考察している

と指摘しているのである。

ここで中原が挙げているのは、木枠に張られた布の表面を紙やすりでこすっ

て傷を付けた沈文燮の作品、地塗りしていないカンヴァスに絵の具を染み込ま

せた尹亨根の絵画などである。水滴を描いた金昌烈の作品も、何かに水滴が付

26) ハロルド・ローゼンバーグ, 『新しいものの伝統』東野芳明・中屋健一訳(東京:紀伊國屋書

店, 1965年), 23[Harold Rosenberg, “American Action Painters [1952],” in The Tradition of the New (New York: Horizon Press, 1959), 25].

27) ただし、こうした度重なる留保は、中原が単色画を韓国の民族や伝統と結びつけたくなる誘惑

にかられていることの表れであると解釈することもできるだろう。

28) 中原, 「無題」, 『韓国・現代美術の断面』.

36

着している光景を再現しているのではなく、カンヴァス自身に水滴が付着して

いるように見える点で、やはり平面に考察が向けられていると中原はみなして

いる。

1975年の議論と比べると、1977年の中原の主張は、一見すると、平面性を志

向するモダニズムの本質主義的な議論に戻ったように見える。しかし、中原の

議論は、絵画の本質としての平面ではなく、様々な要素が交渉する場としての

平面を問題にしている点で、グリーンバーグ的なモダニズムとは、やはり異

なっている。中原は、金容翼にとってのシーツや権寧禹にとっての新聞紙のよ

うに、非絵画的要素が二人の作品において重要な役割を果たしていることに注

目している。尹亨根の布の使い方が工芸的であるという指摘も、非絵画的な要

素の働きを指し示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また、1976年の金昌烈の個展では、

水滴のイリュージョンと布の物質性という「複合性」に注目し29)、1978年の朴

栖甫の個展では、ドローイングとペインティングの「カットウ」(葛藤)を指

摘している30)。いずれも、複数の要素が交渉する場としての平面を問題にして

いる。中原は、ひとつの絵画的本質に向かうモダニズムの還元主義的な過程で

はなく、絵画を構成する複数の要素が交渉する構造に関心があった。その意味

で、中原の議論は一貫して、「フラットベッド画面」として単色画を捉えよう

とする試みであったと言えるだろう31)。

おわりに

本稿では、中原の韓国現代美術論を考察した。とりわけ、1975年に東京画廊

で開かれた「韓国・5人の作家 5つのヒンセク〈白〉」展、そして、1977年に東

京セントラル美術館で開かれた「韓国・現代美術の断面」展のカタログに書か

29) 中原佑介, 「金昌烈」, 『金昌烈』(東京: 東京画廊, 1976年).

30) 中原佑介, 「朴栖甫」, 『朴栖甫』(東京: 東京画廊, 1978年).

31) 1983年に東京都美術館で開かれた「韓国現代美術展」に際して、中原は、単色画の作品は「画面の物質性そのものを作品形成の根本的な要素にしようとしている」と述べているが、これも

同様の視点から解釈するべきであろう。中原佑介, 「独自性の強い白、単色  韓国現代美術

展」, 『毎日新聞』, 1983年7月1日夕刊, 7.

플랫베드 화면으로서의 단색화: 나카하라 유스케의 한국현대미술론 37

れた中原の文章に注目した。中原が、他の論者と異なり、単色画を韓国の伝統

や民族と結びつけることを避けて、スタインバーグのフラットベッド画面やリ

オタールの母胎と並行する理論的な意味を見いだしていたことを明らかにし

た。

中原は、単色画をはじめとする韓国の現代美術になぜ惹かれたのだろうか。

1970年代初頭に、それまでの過激な前衛美術の運動が一段落して、美術の基本

に立ち戻って考えようとした矢先に、中原は韓国の単色画に出会った32)。1972

年に中原は、1960年代後半から1970年代初頭までに書いた批評を、『見ること

の神話』と『人間と物質のあいだ  現代美術の状況』という2冊の本にまとめて

出版した33)。さらに、1962年に刊行した初の著書『ナンセンスの美学』を改訂

して『ナンセンス芸術論』として刊行した34)。過去の自分の仕事を振り返り、

70年前後の喧噪の中で書いた文章もまとめた中原は、同時代の美術の動向に関与するよりも、一歩下がって芸術そのものを考え直そうとしていた。その後に

出した本のほとんどは――『大発明物語』(1975年)、『現代芸術入門』(1979

年)、『現代彫刻』(1982年、改訂新版、1987年)など35)――、芸術を原理的に

捉えようとするもので、同時代の美術動向を中心的に論じた論集は、以後刊行

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し、そもそも同時代の美術について書く機会も減って

いった。芸術一般へと関心が推移する中、絵画の基本を捉え直そうとする韓国の単色画は、中原にとって大きな示唆を与える動向だったのではないだろう

か。

中原は、1977年の文章の最後で、韓国の現代絵画には、「「韓国の」という

肩書きをはなれて、現代絵画について検討させるものが多く含まれている」と

述べた36)。中原は、単色画を、韓国の独自の問題に取り組んでいる動向という

32) 日本にも同様の動向が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李禹煥の《線より》《点より》、そして、堀浩

哉や彦坂尚嘉の絵画作品をこうした文脈で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

33) 中原佑介, 『見ることの神話』(東京: フィルムアート社, 1972年); 同, 『人間と物質のあいだ 

現代美術の状況』(東京: 田畑書店, 1972年).

34) 中原佑介, 『ナンセンスの美学』(東京: 現代思潮社, 1962年); 同, 『ナンセンス芸術論』(東

京: フィルムアート社, 1972年).

35) 中原佑介, 『大発明物語』(東京: 美術出版社, 1975年); 同, 『現代芸術入門』(東京: 美術出

版社, 1979年); 同, 『現代彫刻』(東京: 美術出版社, 1982年; 改訂新版1987年).

36) 中原, 「無題」, 『韓国・現代美術の断面』.

38

よりは、より普遍的な絵画の問題を探求している一群の画家の活動とみなして

いた。しかし同時に、そこに全く地域的な問題を認め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

中原は、同じく1977年に、韓国の美術家とともに、「絵画におけるヨーロッパ

的なものと非ヨーロッパ的なものといった問題」を考えることの重要性を指摘

し37)、1978年には、朴栖甫や韓国の他の美術家に「非ヨーロッパ的なものを感

じる」と述べていた38)。興味深いのは、中原が、積極的に「韓国的なもの」や

「アジア的なもの」を掲げるのではなく、「非ヨーロッパ的なもの」という、

否定によって規定される地域性を論じていることである。ヨーロッパ中心の美

術史を相対化する際に、アジア美術などの対抗的な概念を立てることに、中原

は慎重だった。それは、ヨーロッパ美術という概念の裏返しでしかないことを

中原は十分理解していた。かといって、地域と全く関係ない普遍的な美術を目

指すべきであるとも中原は主張しなかった39)。普遍性は、ヨーロッパ美術が掲げてきたものだったからである。中原は、「ヨーロッパの美術界が長い間、ア

ジア各国や非ヨーロッパ諸地域の美術を無視してきたのは、それがヨーロッパ

美術の考える普遍性に適合しないと見たからである」と述べている40)。中原

は、地域を越えた文化の特殊性と多様性に目を向けるべきだと主張し、美術の

(ヨーロッパ的な)「普遍性」の再考を促している。そのとき、ヨーロッパ以

外の地域で絵画の一般的な問題を考察してきた韓国の単色画の果たす役割は少

なくないだろう。単色画とその言説の可能性を考察し、グローバルな美術史に

それがあるべき正当な場所を与えていくことは、現在の私たちの責務である。

37) 中原佑介, 「現代美術へアピールする一群 「韓国・現代美術の断面」展」, 『美術手帖』, 第

424号(1977年9月), 125頁.

38) 中原, 「朴栖甫」.

39) ただし、以下の文章では、「世界に普遍的な美術というものが想定されるべきであろう」と述

べている。中原佑介, 「展覧会によせて」, 『韓国現代美術の位相展』(京都: 韓国京都青年会議所, 1983年).しかし、その後この考え方を展開させて形跡はない。

40) 中原佑介, 「普遍的なアジア美術はない 特殊・多様性に焦点を当てて」, 『読売新聞』, 1995年1月6日夕刊,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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