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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로축구와 지역민족주의 -아뜰레틱 빌바오와 F.C.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임호준 단독/서울대학교 Yim, Ho-Joon (2011), La cristalización y la evolución de los nacionalismos en el fútbol español: los casos del Athletic Bilbao y el F.C. Barcelona. Abstract Muchos académicos están de acuerdo en el hecho de que, en España, el fútbol tiene mayor significación porque es mucho más que un deporte popular, puesto que ha posibilitado la cristalización de la identidad colectiva de sus diversos pueblos. En especial, en regiones o comunidades de arraigada tradición nacionalista, como las del País Vasco, Cataluña y Galicia, el fútbol contiene una profunda dimensión política y sus clubes de fútbol, como el Athletic Club de Bilbao (fundado en 1898) o el Futbol Club Barcelona (fundado en 1899), han actuado como símbolos de sus respectivos nacionalismos. Esta peculiaridad del fútbol español se explica, también, por su historia: primero, la fundación de los clubes vinculada al contexto socio-industrial de esas regiones y, luego, la represión franquista contra esos nacionalismos. Asimismo, es decisivo el modelo de gestión del club: de propiedad colectiva mediante un sistema de participación de los socios y una política de promoción de los jugadores de la cantera. En consecuencia, el nacionalismo involucrado en el fútbol español ha provocado un conflicto con la identidad nacional española. Sin embargo, el mayor cambio en el fútbol español ha sido causado por la globalización. Sobre todo, el libre fichaje de jugadores extranjeros y los grandes ingresos obtenidos de los derechos de retransmisión por TV han cambiado totalmente la situación del fútbol profesional. Así pues, la mayor parte de los clubes españoles de fútbol profesional se han visto obligados a transformarse en sociedades anónimas para obtener ventajas desde el punto de vista financiero y jurídico. No obstante, los cuatro clubes de mayor tradición de gestión con un sistema de socios (Real Madrid CF., FC. Barcelona, Athletic de Bilbao y Club Atlético Osasuna) han podido mantener el sistema actual de posesión colectiva. A pesar de ello, mientras que las dos primeras entidades han aprovechado la nueva coyuntura del mundo del deporte con mucho éxito Revista Iberoamericana 22.2 (2011): 3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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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로축구와 지역민족주의-아뜰레틱 빌바오와 F.C.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임 호 준단독/서울대학교

Yim, Ho-Joon (2011), La cristalización y la evolución de los nacionalismosen el fútbol español: los casos del Athletic Bilbao y el F.C. Barcelona.

Abstract Muchos académicos están de acuerdo en el hecho de que, enEspaña, el fútbol tiene mayor significación porque es mucho más que undeporte popular, puesto que ha posibilitado la cristalización de la identidadcolectiva de sus diversos pueblos. En especial, en regiones o comunidades dearraigada tradición nacionalista, como las del País Vasco, Cataluña y Galicia, elfútbol contiene una profunda dimensión política y sus clubes de fútbol, como elAthletic Club de Bilbao (fundado en 1898) o el Futbol Club Barcelona (fundadoen 1899), han actuado como símbolos de sus respectivos nacionalismos. Estapeculiaridad del fútbol español se explica, también, por su historia: primero, lafundación de los clubes vinculada al contexto socio-industrial de esas regionesy, luego, la represión franquista contra esos nacionalismos. Asimismo, esdecisivo el modelo de gestión del club: de propiedad colectiva mediante unsistema de participación de los socios y una política de promoción de losjugadores de la cantera. En consecuencia, el nacionalismo involucrado en elfútbol español ha provocado un conflicto con la identidad nacional española.Sin embargo, el mayor cambio en el fútbol español ha sido causado por laglobalización. Sobre todo, el libre fichaje de jugadores extranjeros y losgrandes ingresos obtenidos de los derechos de retransmisión por TV hancambiado totalmente la situación del fútbol profesional. Así pues, la mayorparte de los clubes españoles de fútbol profesional se han visto obligados atransformarse en sociedades anónimas para obtener ventajas desde el puntode vista financiero y jurídico. No obstante, los cuatro clubes de mayor tradiciónde gestión con un sistema de socios (Real Madrid CF., FC. Barcelona, Athleticde Bilbao y Club Atlético Osasuna) han podido mantener el sistema actual deposesión colectiva. A pesar de ello, mientras que las dos primeras entidadeshan aprovechado la nueva coyuntura del mundo del deporte con mucho éxito

Revista Iberoamericana 22.2 (2011): 37-63.

I. 들어가며

오늘날스페인에서정치·사회적으로가장중요한이슈는, 바스크무장독

립단체 ETA 문제를포함하여바스크, 까딸루냐, 갈리시아, 발렌시아, 발레아

레스제도등에서발전해온지역민족주의문제라는데이의를제기할사람

은거의없어보인다.1) 스페인현대사에서가장큰비극으로남은스페인내

전 역시 지역민족주의가 전쟁발발의 중대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현재

표면적으로드러나는많은사회적이슈에지역민족주의가결부되어있음은

잘알려진사실이다. 예를들어, 최근까딸루냐에서투우를금지하는것에대

해많은논의가있었고결국까딸루냐의회에의해투우금지법이통과된것

역시, 명목상으론동물학대와전통고수사이의갈등이쟁점인것같지만그

내부에는카스띠야중심의스페인문화전통과거리를두려는까딸루냐의문

화적차별화의지가작용하고있음은쉽게알수있는사실이다.

이에비해스페인의프로축구는스페인지역민족주의의현주소를극명하

게드러내고있는분야이다. 일반적으로세계각국의프로스포츠는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팀들이 경쟁하는 시스템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프로 스포츠

는지역주의와관련을맺지않을수없다. 따라서스페인처럼프로축구가엄

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고 동시에 지역적 정체성이 민족주의로까지

y se han convertido en los dos clubes con más ingresos del mundo, por suparte el Athletic de Bilbao está esforzándose por conservar su política decantera. Sin duda, será interesante observar cómo el fútbol español, demarcada tradición nacionalista, evoluciona en un futuro más globalizado.

Key words fútbol español, FC Barcelona, Ahtletic Bilbao, nacionalismo en España,globalización스페인 축구, FC 바르셀로나, 아뜰레틱 빌바오, 스페인의 민족주의,지구화

임호

준스페인

프로축구와

지역민족주의

-아뜰레틱

빌바오와

F.C.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1) 국가 차원의 민족주의 전통이 박약한 스페인에서‘Nacionalismo’는 지역의 민족주의를지칭한다. 그럼에도이 에서바스크, 까딸루냐등의민족주의를일컬어‘민족주의’라는말대신굳이‘지역민족주의’라는말을쓰는것은국가적차원의민족주의와의혼동을피하기위해서이다.

발전된국가에서프로축구는지역민족주의의각축장이될수밖에없었던것

이다.2) 실제로스페인프로축구에는 20세기초출범이래로정치·사회적논

리가 깊숙하게 개입하여 다른 유럽국가의 프로축구리그에서 볼 수 없는 특

이한양상이펼쳐져왔다. 많은스포츠사회학자들은, 지역클럽에대한광적

인애정은유럽의어느나라에서나볼수있지만여기에현실정치의함의가

덧씌워져있는것은스페인축구의특이점이라고지적한다.3) 이렇게스페인

에서프로축구가계층을막론하고국민들의일상을지배하며엄청난대중적

관심을모으는것은프로축구가단순한엔터테인먼트이상으로기능하며개

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국면으로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지

역구단들은‘단순한클럽을넘어 Más que un club’라는모토를앞다투어

사용하고있다.

이러한 지역의 열성적 지원을 등에 업고 스페인 프로축구는 지구화 시대

를 맞아 국, 독일, 이탈리아축구 등과 함께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관심을

모으는엔터테인먼트가됐고우리나라에서도젊은층을중심으로많은팬을

확보하고있다. ‘엘클라시코 El clásico’라불리는레알마드리드와 FC 바르

셀로나간의경기는이제지구촌최대의스포츠이벤트로서 10억명이상이

TV중계를시청하는것으로추산되고있다.4) 이에따라레알마드리드와 FC 바

르셀로나 구단 간의 역사적인 라이벌 관계도 인구에 회자되고 스페인 축구

에얽힌지역민족주의도웬만한축구팬이라면누구나다아는상식에속하

는이야기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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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페인에서 프로축구가 누리는 대중적 인기와 사회적 향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설명할필요가없을듯하다. 다만계량화가가능한경제적인지표로보자면, 스페인전체 GDP에서프로축구가직간접적으로산출하고있는효과는 1.7% 정도로추산이된다(Llopis Goig 2008, 56-63).

3) 예컨대 많은 지역구단들이 독립 또는 자치를 염원하는 지역 민족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프랑코의 정치적 탄압으로 인한 저항의식의 매개체가 되는것등이정치적함의의배경이된다고할수있겠다.

4) http://www.livesoccertv.com/news/2185/where-can-i-watch-el-clasico-live-fc-barcelona-vs-real-madrid-2010/

그러나 스포츠 측면의 격앙된 라이벌 관계로 인해 스페인 사회의 지역민

족주의는그양상이과장되고의미가왜곡되거나역사적맥락이피상적으로

알려진경향이있다. 그동안스페인축구에대해다양한시각에서세계적으

로많은학술적연구들이있어왔지만, 국내에서는본격적인연구가거의없

었기때문에지역민족주의가결부된스페인축구클럽의특징과사회적의미,

지역정체성의형성에미치는 향, 그리고현재의다양한양상과의미에대

해서잘알려지지못했다. 이 은이러한국내의현실을감안하여스페인지

역민족주의와 프로축구와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과 함께, 스페인 프

로축구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가/지역 민족주의의 갈등과

전개양상을역사적·사회적변화의맥락속에서살펴보도록하겠다.

II. 지역민족주의와 정체성의 결정체로서 프로 축구클럽의 발전 요인

앞에서 말했듯, 스페인 축구클럽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단순히 팬들의

애정을모으는스포츠팀으로서의기능을넘어지역정체성의결정체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프로 축구를 연구한 국인 사회학자 볼은

“고향의이름을딴 (스페인) 클럽은그지역의 혼으로서지역의축제, 지역

의사람들또는지역의역사보다도더강력하게그지역공동체를대표한다”

라고말한다(Ball 2011, 192). 이렇게된데에는근대이래지역민족주의를심

화시킨 스페인의 역사적 상황이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역민족주

의가축구클럽과결부된데는클럽의탄생이나발전과정, 운 상의독특함

그리고스페인의역사적상황도결정적인역할을했다. 이것은크게네가지

로요약될수있다.

1. 자생적 창설과정

스페인에서 프로축구과 지역 민족주의가 결합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구단의 창설과 초기의 발전과정이 그 지역의 정치·사회적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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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과긴 하게연관되어있다는점이다. 스페인프로구단들은, 우리나라처럼

프로축구의리그시스템이생긴후그에따라지역분배에의해인위적으로

창단된것이아니라, 각지역의발전과정속에서자생적으로발전하게되었

다. 바스크지역에서초기에많은축구구단들이창단된것은 19세기바스크

지역철강산업의발전과관련이깊다. 빌바오를중심으로한바스크지역의

철광개발을위해 국노동자들이몰려왔고이들에의해축구가바스크지

역에 빠르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스크 출신의 자제들로서 국으

로유학을떠나축구를배워온스페인유학생들도바스크지역에축구가발

전하는데중요한역할을했다.

그리하여 국인노동자, 스페인유학생, 그리고지역민들은 1898년자신

들의구단인아뜰레틱빌바오(Athletic Bilbao)를창설했다.5) 그리고곧이어

1902년이룬풋볼클룹(Irún Fútbol Club), 1908년라싱클룹데이룬(Racing

Club de Irún), 1909년레알소시에닷(Real Sociedad), 1914년아레나스클룹

데헤초(Arenas Club de Getxo) 등많은구단이바스크지역에서창설되었다.

이러한바스크지역팀들은 1929년스페인프로리그라리가(La Liga)의창설

에도주도적인역할을담당했는데6) 첫시즌열개의참여팀중에서다섯개

가 바스크 팀이었을 정도로 바스크는 초기 스페인 프로축구의 중심지가 되

었다. 이렇듯 초기 바스크 축구구단의 창설과 발전에는 지역의 경제적·산

업적환경이 접하게작용했다.

그리하여아뜰레틱구단의승리는지역최대의축제가되었는데아뜰레틱

구단이 리그를 우승하거나 국왕컵을 차지하게 되면 빌바오의 산 안톤(San

Antón) 성당에서 주교의 집전아래 특별 미사가 행해졌고 여기서 그들의 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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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뜰레틱빌바오는스페인에서두번째로창설된축구구단이다. 첫번째는 1889년에창설된레끄레아띠보데우엘바Club Recreativo de Huelva) 구단이다.

6) 스페인 리그의 창설을 처음 제안한 인물은 아레나스 클룹 데 헤초의 호세 마리아아차(José María Acha) 회장으로서, 1927년 4월그의제안에따라스페인리그창설을 위한논의가 시작되었고결국 1929년 처음으로스페인프로축구리그가시작되었다.

로피는빌바오시의수호성인인성모베고냐(Virgen de Begoña)에게바쳐졌

다(Terrachet 1969, 6). 그리고선수들은바스크의아들로간주되었기때문에

1970년대까지만해도, 시즌종료와함께빌바오예수회대학에일주일동안

합숙하며 적훈련의시간을가졌다(MacClancy 1996, 186).

바르셀로나구단의창단역시지역의산업적발전과관련이깊다. 바르셀

로나구단은 1899년스위스사업가한스캄페르(Hans Kamper)에의해창단

되었는데그는이름을까딸루냐어를따라조안감뻬르(Joan Gamper)라고개

명했을정도로까딸루냐민족주의에동화된인물이었고바르셀로나구단이

까딸루냐지역정체성의결정체로서떠오르는데결정적인역할을수행했다.

그는구단의재정이가장어려웠던시기인 1908년부터 1925년까지구단회장

직을수행하면서까딸루냐지역의성공한상공인들을회원으로불러모았고,

구단을 까딸루냐 민족주의 운동과 연계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까딸루냐어

학교를세우고, 구단멤버들에게까딸루냐어를가르치고스페인으로부터까

딸루냐의독립을위한캠페인을펼쳤다(Hamil et al. 2008, 478).7) 이렇듯 FC

바르셀로나의창단에는처음부터지역주의가결부되어있었다.

2. 집단적 소유구조

스페인프로축구가지역적정체성을대표할수있는또하나의중요한이

유는 바로 소유구조에 있다. 알다시피 유럽축구계에서 대자본의 논리가 지

배하기시작한 2000년대이후, 국의주요구단들은러시아, 미국, 아랍의재

벌에매각되었고이들의자본력을바탕으로유럽무대에서월등한성적을올

리고있다. 창단당시에는시민회원들에의해집단소유되던구단들이, 운

에 유리한 일반회사의 형태로 바뀌었고 그래서 이제는 개인들에게 매각된

것이다.

반면스페인의레알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뜰레틱빌바오등의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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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러한독립캠페인으로인해 1925년, 리베라장군의쿠데타정권에의해, 바르셀로나구단은 6개월동안활동금지를당하기도했다(Hamil et al. 2008, 478).

들은클럽회원들(socios)을바탕으로한, 집단지배체제를고수하고있다. 원

래는 모든 구단들이 이러한 회원제에 의해 운 되었으나 1990년 발효된 스

페인스포츠법령은, 스페인리그에참여하는모든구단이의무적으로회사

(Sociedad Anónima) 구조로바꾸도록규정했다(Ley del deporte, artículo 19).

집단소유제로는법적이고재정적인책임을감당하기어렵다고판단했기때

문이다. 그러나이법령은네구단을예외로인정했는데, 레알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뜰레틱 빌바오, CA 오사수나 구단이다. 네 구단이 스포츠 클

럽의형태로남을수있게된이유는지역의정체성을대표할만큼회원제의

전통이 뿌리 깊고 대부분의 회원들이 회원 시스템을 지지하고 신봉하기 때

문이다.

2010년 6월현재바르셀로나구단은 17만 5천명의회원(socio)을보유하고

있는데이중에서 17%가외국인이다(Hamil et al. 2010, 476). 회원은매년연

회비를 내고 회장이하 운 진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8) 아뜰레틱

빌바오의회원은 32,000 명에달하고있다. 돈이많은사람이라도구단에더

투자할 수 없고 오로지 회원의 1년 회비만을 낼 수밖에 없다. 돈 많은 한 두

사람에의해클럽의운 이좌지우지되지않고공동으로소유되는것을대

부분의회원이원하기때문이다. 구단의운 을위해대표자회의가개최되

는데바르셀로나구단의경우대표단은 3,000 명으로구성되어있고이대표

단은회원중에서컴퓨터추첨으로정해진다. 집단소유구조에서중요한것

은재정과운 의투명성인데이를위해구단은모든회원들에게두달에한

번씩뉴스레터를보내구단운 을보고하고있다.

팬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소유되는 스페인 클럽의 방식은 구단의 중대한

결정이 팬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재정을확보하는데는일반회사보다불리한것이사실이다. 그래서 22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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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구단의 수입 확충을 위해 라뽀르따 회장은 회원을 매년 만여 명씩 늘렸다. 그래서2002년 105,000 명이었던회원이이렇게늘었다. FC 바르셀로나구단의경우, 2008년성인회원의연회비는 175유로에달했다.

안바르셀로나구단의회장을지낸조셉류이스누녜스(Josep Lluís Núñez)는

1990년대후반, 바르셀로나구단을일반회사(Sociedad Anónima)로바꾸어

주식시장에 상장하려고 했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회원들이 조안 라뽀르

따(Joan Laporta)를중심으로‘푸른코끼리 L’Elefant Blau’라는조직을결성

하여누녜스회장을탄핵하는운동을벌 다. 2003년선거에서회장에당선

된라뽀르따는 FC 바르셀로나구단의의미에대해“축구와 FC 바르셀로나는

많은까딸루냐사람들에게삶의방식이다. 축구에서매우중요한것은동족

정신이다. 이것이없다면축구는아무것도아니다”라고말하며(Hamil et al

2010, 497)9) 집단소유체제를바르셀로나구단의정체성으로서계속유지해

나갈것임을천명했다.

3. 선수 구성의 순혈주의

이것은 바스크 구단에만 해당되는 것으로서 선수단을 그 지역 출신 선수

만으로한정한것은세계축구클럽에서아주드문경우다. 아뜰레틱빌바오

구단은 1919년바스크지역에서태어난, 바스크혈통의선수만이구단선수

로뛸수있다고공식선언했다.10) 레알소시에닷(Real Sociedad) 구단역시

바스크지역에서태어난사람으로선수자원을한정했지만바스크혈통이아

닌 이민자의 자손도 허용함으로써 아뜰레틱 구단에 비해서는 다소 문호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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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국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 팬들은, 외국 자본이 국 클럽을 인수하고 모든 결정이구단주개인의의사에의해내려지자스페인의소유모델을부러워하기도한다.실제로미국인Gillett and Hick가(家)에의해인수된 국리버풀구단의팬들은, 개인으로부터구단을다시인수하기위해 7억달러모금을목표로 10만명의회원을모집하려는운동을시도하기도했다http://edition.cnn.com/2009/SPORT/football/03/17/fan.ownership.club/

10) 아뜰레틱구단의폐쇄주의는내부적으로는바스크인들의지지를받았지만외적으로는많은비판에직면했다. 비판중에는, 기본적으로바스크의순혈성에회의적인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는데 바스크 지역에는 19세기의 산업적인 발전으로 인해 외부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고 이로써 1900년대에 이미 80%의 거주민들이이민자들이거나이민자의자식들이었기때문이다(Shafir 1995, 42-3).

선수들은프로선수이기이전에지역주민인만큼구단은그들에게보통의

월급만을지급했고대신남는돈을유소년클럽에투자하여지역내에서우

수한 인재들이 길러지도록 했다(MacClancy 1996, 184). 이로써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민들은 선수들에게 동지애를 느끼며 아주 쉽게 클럽과 동

일시할 수 있게 되었다. 1917년부터 1926년까지 아뜰레틱 빌바오 구단에서

선수로뛰었던호세마리아에리세(José María Erice)는그당시선수단의분

위기에대해“우리는진정한형제 다. 구단회장과도마찬가지 다.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 도시와 구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라고

말했다(Athletic Club 1986, Vol I: 27). “지역선수와팬만으로충분하다. 수입

할필요는없다Con cantera y afición no hace falta importación”라는구단모

토에서드러나듯, 아뜰레틱빌바오구단은현재까지순혈주의를고수해오고

있다. 앞서말했듯바스크지역은일찍부터축구가발전했던곳이라, 다른지

역의 선수들을 입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어서 1950년대까지

리그를여섯번이나제패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스페인 축구에서 외국 선수들에 대한 제한이 점차

완화되었고 1990년대부터외국선수들이본격적으로 입되기시작하자바

스크 구단들의 성적은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알 소시에닷 구단은

1989/90 시즌에처음으로, 스페인타지역선수와외국선수를스카웃했다. 팀

의핵심선수는바스크출신으로유지한다고발표했지만순혈주의의포기와

다름없었다. 아뜰레틱 빌바오 구단은 1996년 루이스 페르난데스(Luis

Fernández)의감독취임과함께, 구단의선수로뛰기위해선혈통과관계없

이 바스크 지역에서 축구를 배우기만 했으면 된다는 것으로 순혈주의를 수

정했다.11) 그러나이조항은바스크와아무런연고가없는타지역출신선수

들이나외국인선수를 입을불가능하게하기때문에12) 순혈주의의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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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스크의구단들은유소년클럽을활발하게운 하기때문에타지역이나외국에서도많은축구유망주들이유학을오는데이들이성장하여성인축구선수가되었을때빌바오구단에서뛰는것을허용하겠다는이야기이다.

12) 순혈주의를선언한이후아뜰레틱빌바오구단에외국인선수가뛰지않은것은아

고보기는어렵다.

다른팀들이자유롭게타지역또는외국선수들을 입하는상황에서아

뜰레틱의 순혈주의는 성적의 부진을 가져왔다. 그러나 바스크 사람들은 빌

바오팀의오랜전통이깨어지는것을원치않는다. 1992년의조사에서빌바

오팀의 회원들은 53%가 클럽을 일반회사의 행태로 바꾸는 것에 반대했고,

83%가다른지역선수를기용하는것에반대했다. 76%의소시오가다른지

역선수를기용하느니차라리팀이 2부리그로강등하는것을보겠다고했다

(MacClancy 1996, 65).

무엇보다 구단의 성적에 신경을 쓰고 있는 바르셀로나 구단이나 레알 마

드리드 구단은, 선수단 구성의 순혈주의를 채택하지는 않지만 지역 선수들

을키우고기용하는데많은노력을기울이고있다. 이를테면 2부리그에속

해있는 바르셀로나 B구단이나 까스띠야(Castilla) 구단은 FC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에지역선수를공급하는역할을맡고있다. 팬들또한성적에

연연하면서도타지역선수들이지나치게많아지는것에대해선경계하는입

장이다. 예를 들어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바르셀로나 팀의 감독이었던 네

덜란드인루이스반할(Louis Van Gaal)은, 세시즌동안두번이나팀을리그

정상에올려놓았음에도팬들과지역언론은그가외국인선수, 특히네덜란

드선수들을지나치게많이 입하여바르셀로나팀의까딸루냐색채가희석

되는것에대해불평했다(Burns 1999, 27).

바르셀로나의팬들은외국인선수에대해서도까딸루냐문화와정체성에

대한존중을요구하고있다. 1973년부터 1978년까지선수로뛰었고 1988년

부터 1996년까지감독을맡았던네덜란드인요한크루이프(Johan Cruyff)가

바르셀로나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은, 그가 다른 외국선수들과 달리

까딸루냐문화와정체성을이해하고이에동화되는행보를보여주었기때문

이다. 그는아들에게도바르셀로나수호성인의이름을따서조르디(Jordi)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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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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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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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니다. 프랑스국적의대표선수빅상트리자라쥐(Bixente Lizarazu)가 1997년시즌에입되었는데그의어머니가바스크계이기때문이다.

고 하는 까딸루냐식 이름을 붙 을 정도로 까딸루냐에 애정을 보여줬고 이

덕분에 2009년부터까딸루냐대표팀감독직을맡고있다.

4. 프랑코의 지역민족주의 억압과 역효과

스페인프로축구와지역민족주의가결부되게된네번째의요인은역사적

인것이다. 내전에서승리한프랑코는지역민족주의를분리주의로규정하고

이를혹독하게탄압했다. 그는바스크어, 까딸루냐등지역어의공식적인사

용을금지시키고지역민족주의와조금이라도연관되어있다고추정되는모

든활동을금지시켰다. 지역축구구단의운 진을모두정권이임명했고구

단의명칭또한스페인어식으로바꾸었는데아뜰레틱빌바오라는 어식이

름은아뜰레띠꼬데빌바오(Atlético de Bilbao)로, F.C. Barcelona는Barcelona

Club de Fútbol로바뀌었으며, 스포팅히혼(Sporting Gijón)은데뽀르띠보히

혼(Deportivo Gijón)으로, 아뜰레띠꼬데마드리드(Altético de Madrid)는군

대식으로아뜰레띠꼬비행단(Altlético Aviación)으로개명되었다. 모든선수

들은킥오프직전에파시스트찬가인 Cara al Sol 을부르고파시스트식으로

경례를하며‘Arriba España! Viva Franco’를외쳐야했다(Kassimeris 2008,

22). 축구 협회는 1943년, 국왕컵(Copa del Rey)을 총통컵(Copa del

Generalisimo)으로바꾸었다. 또한유니폼에바스크나까딸루냐의깃발부착

이금지되었고경기장에서도지역깃발사용이금지되었다.

프랑코는 축구를 통해 스페인의 국가적 단합을 모색하고 국가 정체성을

세우려고했다. 그래서각클럽의운 진을자신이임명했을뿐만아니라일

간지기자의관전평까지점검하여애국심을고취시키는방향으로기사를쓰

게했다. 예를들어 1950년리오데자네이로에서스페인대표팀이잉 랜드

대표팀을이겼을때언론들은“스페인축구사에빛날위대한승리”로서“

광스럽고(glorioso)”, “감격적이고(sensacional)”, “휼륭하고(magnífico)”,

“ 감적이다(inspirador)”등의수식어를써가며승리를축하했다. 그리고관

중들은“스페인! 스페인!을연호했다”라고보도했다. (ABC, 4 julio 1950,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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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lley 2006, 103).

1950년대 후반 레알 마드리드의 빛나는 전과는 스페인의 국가적 승리로

이어졌다. 1957년 유럽 컵 결승에서 피오렌티나를 이긴 후 기자는“우리는

최고라는것을입증해왔고지금도우리는최고다. 레알마드리드는다른어

떤것보다도스페인자체이다”라고썼다(ABC, 31 mayo 1957). 레알마드리

드구단을‘우리’로표현함으로써모든스페인국민이승리자임을은연중에

내포하고있다. 게다가한술더떠레알마드리드의승리를중세의십자군에

비유하며“챔피언의흰셔츠를입은그들은십자군이갑옷을입었을때의감

정을느꼈을것이다. 패배가눈앞에왔을때도절대포기하지않는고귀한정

신력은 레알 마드리드가 전 세계를 제패해 온 비 병기이다(ABC, 31 mayo

1957, Liz Crolley 2006, 106)”라고기술했다. 프랑코시대레알마드리드는사

실상지역의팀이아닌국가적팀이었다. 스페인국가대표팀도많은수의레

알마드리드선수로구성되었었다.

그러나 프랑코는 스페인 프로축구에 뿌리박힌 지역민족주의를 과소평가

했다. 지역주의는 오히려 지역적 라이벌 의식을 강화시켰고 지역민들은 축

구를통해자신들의정치적의사를표현하려했다. 프랑코의총애를받은레

알마드리드는중앙집권적인유일문화를추구하는프랑코정권자체로인식

되어서, 지역의팀들이레알마드리드와경기를할때는거기에과도한정치

적의미를부여했다.13) 그래서 FC 바르셀로나나아뜰레틱빌바오가레알마

드리드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때는-특히 프랑코가 직접 경기를 관람했을 때

는- 기쁨이배가되었고(MacClancy 1996, 192) 지역민들에게는그자체가민

주주의의승리로받아들여졌다(Hamil et al. 2010, 4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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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내전이전레알마드리드는오히려공화국에가까운쪽이었다. 프랑코와 월관계를유지했던산띠아고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éu) 회장이전에레알마드리드의회장이었던라파엘산체스게라(Rafael Sánchez Guerra)는전쟁이프랑코의승리로끝나자망명을떠났으며부회장이었던곤살로아기레(Gonzalo Aguirre)와재무담당발레로리베라(Valero Rivera)는프랑코파에의해총살되었다.

14) 프랑코정권은바스크와까딸루냐지역구단의지역주의를희석시키기위해북쪽의

그당시거리에서집회를하거나지역어를쓰는것이허용되지않았던까

딸루냐와바스크인들에게그들의축구경기장은일종의해방구 다. 대규모

의까딸루냐인, 바스크인들이모여서마음껏그들의언어로떠들수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아뜰레틱 빌바오와 레알 소시에닷 구단은 그들의

유니폼으로 붉은색-녹색-흰색의 바스크 상징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

고아뜰레틱의팬들은당시중앙정부에의해금지된바스크깃발(Ikurriñas)

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많은 선수들은 금지된 바스크어를 배우기도 했다

(Shaw 1987, 192). 1975년 9월, 프랑코정권에의해체포된 5명의 ETA 요원들

이 교수형에 처해지자 아뜰레틱 선수들은 경기에서 검은 리본을 착용했다.

그리고 이 행동을 주도한 골키퍼 이리바르(Iribar)는 스페인 국가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나참여를거부했다(MacClancy 1996, 193). 그는 1977년유벤투스

와의유럽컵결승전경기에서는, 팬들로하여금바스크깃발을흔들며감옥

에갇힌 ETA 요원들의석방을촉구하는함성, ‘Presoak kelera!(죄수들을거

리로!)’을외치도록주도했다(Shaw 1987, 232-3).

프랑코시대에지역민족주의의전통이박약한곳에서는오히려축구의열

기가 사그라졌다는 사실은 프로축구가 이 시기에 정치적인 저항의 의미로

환원되었다는것을말해준다. 예를들어남부세비야의경우, 팬들이줄어들

어레알베티스(Real Betis) 구장은군대차량의주차장으로전용되었고세비

야 구단의 시설물들은 프랑코의 지역 행정을 위해 사용되었다(Kassimeris

2008, 23). 이렇듯프랑코의지역민족주의에대한탄압은역효과를불러와지

역축구클럽들의정체성강화에오히려도움을주는결과를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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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Osasnuna) 구단과까딸루냐의에스파뇰(Español) 구단 -프랑코시대에는Sociedad española de Fútbol-을지원했다. 이들구단의경우지역적정체성을추구하는팬들과국가적이고통합적인정체성을선호하는팬으로나눠진다. 프랑코사망 후, 1979년 바스크 대표팀이 소집되었을 때 오사수나 구단이 선수 지원을 거부한것은이런이유에서 다.

III. 지역민족주의와 국가 정체성의 갈등

축구클럽들이지역민족주의와결부된상황이축구를통한스페인의국가

적 정체성 형성에 지장을 초래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같이스페인에서 1900년을전후하여지역구단의창단이봇물을이루게

된다. 그리고 1915년부터 바스크와 까딸루냐는 지역의 선수들로 대표 팀을

만들고정기적으로친선경기를개최했다. 바스크대표팀은내전이한창이던

1938년 쿠바와 경기를 갖기도 했다. 안달루시아도 1928년 자체적으로 대표

팀을구성했고 1929년아르헨티나의보카주니어스(Boca Juniors) 팀과친선

경기를가졌다. 갈리시아도 1922년대표팀을결성했다.

스페인국가대표팀이처음으로구성되어팀을이룬것은 1920년안트워프

(Antwerp) 올림픽경기에서 는데벌써 1904년에유럽 7개국주도로국제축

구연맹이창설되었고 1908년런던올림픽에서축구가처음으로정식종목으

로 채택되어 13개국의 국가대표 팀이 참가했던 것을 감안하면 스페인 대표

팀이 1920년에야 처음 결성되었다는 것은 스페인 축구의 발전 단계를 감안

할때상당히늦은것이었다.15) 이것은물론머레이가말하듯“(스페인에서)

축구는국가적단합을위해서라기보다는지역적분리주의의승강장으로서

기능했기”때문이다(Murray 1996, 30).

스페인에서국가대표팀은 Equipo nacional 이라고부르지않고 Selección

이라는말을쓴다. 이말은선발된선수들로구성된팀이라는의미로서여러

팀들에서잘하는선수를골랐다는의미밖에없다. 그래서 Selección 이라는

말은 바스크 팀, 까딸루냐 팀, 안달루시아 팀을 지칭할 때도 똑같이 쓰인다.

결국스페인에서국가대표팀(National Team)이라는개념은상당히낯설었고

1920년에처음으로결성된국가대표팀에서도북쪽지역연맹 (바스크, 아스

뚜리아스, 까딸루냐)과 기뿌스꼬아 지역 연맹은 선수 차출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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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덴마크 대표팀은 1896년, 프랑스 대표팀은 1900년에 이미 공식 경기를 한 기록이있다(Murray 1996, 194).

(Crolley 2006, 98. 이선수들은전체의 57%에해당하는숫자 다. 이런사태

가벌어지자당시의스포츠신문「마드리드스포츠 Madrid Sport」의기자

던페데리꼬까로(Federico Caro)는다음과같이썼다. “다른사소한이해관

계를 벗어나 모든 사람은 조국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올림픽에)

관광객으로가는것이아니다. 스페인에는투우말고도다른것이있음을세

계에알리기위해대사들로서참가하는것이다(Crolley 2006, 98).”

하지만 스페인에서 축구는 이른 시기 바스크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

기를 누리며 발전했었기 때문에, 1920년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은벨기에에이어은메달을차지하게된다. 그러나그이후최근

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대표 팀이 국제무대에서 거둔 성적은 스페인 프로축

구의수준에비하면상당히초라한것이어서 1950년브라질월드컵에서 4강,

1964년유럽컵에서우승한것이내세울만한전과 다.

1975년프랑코의사망이후스페인에민주주의가도래하자스페인프로축

구계에 지역민족주의의 바람이 다시 불게된 것은 당연했다. 민주화 시대가

되면서까딸루냐의민족주의는부활했고 F.C. 바르셀로나는그중심에있게

되었다. 1900년에 처음으로 구성되어 바스크나 프랑스 대표팀과 많은 경기

를가졌던까딸루냐대표팀은 1993년부터다시정기적으로활동하기시작하

는데주로겨울시즌에다른국가대표팀과경기를가졌다. 1998년불가리

아를 상대로 경기를 가졌으며 에콰도르(2003), 아르헨티나(2004), 브라질

(2005) 등과 경기를 벌 다. 2004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즈음해서는, 까

딸루냐인들은 까딸루냐 대표팀을 국가대표팀으로 인정하여 국제 공식경기

에참여할수있도록요구하는거리시위를벌 다(Crolley 2006, 112).16) 바

스크역시대표팀을부활시켜, 1979년아일랜드를상대로첫국제경기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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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실제로 세계 하키 연맹(IHF)은 2004년 까딸루냐 하키협회의 청원에 의해, 스페인하키협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까딸루냐 대표팀을 공식적인 국가 대표팀으로 인정할것인가여부를두고투표를벌 는데 114대 8 이라는압도적인결과로이안은부결되었다. 대부분의회원국들은세계올림픽연맹에서인정하지않는국가성을인정할수없다는의견을보 다(Crolley 2006, 122).

졌다. 2007년에는베네수엘라와경기를갖는등 1979년이후모두 20경기를

치 다.17) 안달루시아대표팀역시 1990년우루과이, 유고슬라비아와의경기

를갖기시작하며본격적으로친선경기를개최했는데 2000년부터 1년에한

차례씩모로코(2000), 이라크(2001), 칠레(2002), 중국(2005) 등과경기를가

져왔다. 갈리시아대표팀도다시부활하여우루과이(2005), 에콰도르(2006),

카메룬(2007), 이란(2008) 등과친선경기를가졌다.

이러한 지역 대표팀의 부활과 활발한 활동에서 보다시피 민주화 시대 이

래로 스페인 축구에서 지역민족주의의 움직임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04년까딸루냐에서Club Español de Football 이라는이름으로창단

되어, FC 바르셀로나와는 다르게 친중앙정부적인 행보를 보여 왔던 에스파

뇰 구단은 1994년 RCD Espanyol (Reial Club Deportiu de Espanyol de

Barcelona)라는까딸루냐어이름으로개명하여까딸루냐정체성을강조하기

시작했다. 또한 1995년데뽀르띠보꼬루냐(Deportivo Coruña) 구단은스페인

의쁘리메라리가를떠나지역적으로관련이더깊은포르투갈리그로가겠

다고하기도했다(Kassimeris 2008, 39).

스페인 대표팀은 스페인 국내에서 경기를 가질 경우 북부 도시를 기피하

고 대개 남부 도시나 마드리드를 경기장으로 선택하는데 이곳에서 훨씬 많

은지지팬을기대할수있기때문이다. 그동안스페인대표팀이국제무대

에서성적이부진한것에대해, 지역민족주의로인한선수들간의불화를이

유로드는사람들이많았다. 그러나스페인대표팀이 2008년유럽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잇달아 제패하자 이런 이유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어렵

게됐다.

스페인 축구 협회는, 국가대표의 경기에서 관중석에 지역의 깃발을 내걸

거나경기후경기장에지역깃발이들어오는것을허용하고있지만공식시

상대에서는스페인국가깃발만이사용될수있도록규정하고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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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17) http://en.wikipedia.org/wiki/Basque_national_football_team

2008년유럽컵, 2010년월드컵우승당시스페인대표팀주장이케르까시야

스(Iker Casillas)는아무런깃발없이시상대로올라가트로피를받았다. 그러

나 2011년 8월 2일루마니아에서열린유럽축구연맹 U-19 컵에서스페인이

체코를 꺾고 우승을 했을 때 우승 트로피를 받으러 올라간 선수 중 한 명이

아스뚜리아스의 깃발을 들고 올라가려하자 감독이었던 암쁠리아르 히네스

멜렌데스(Ginés Meléndez)는이를빼앗았고이행동이논란이됐다. 이에히

네스멜렌데스감독은, 선수가협회의규정을잊은것같아자신이그규정을

따르도록했을뿐이라고해명했다(Marca, 2 agosto 2011).

스페인에서 지역민족주의의 움직임이 강화될수록 국가 정체성과 마찰을

빚는일은잦아질수밖에없다. 지역팀끼리의배타적라이벌관계가심화될

수록국가정체성이라는하나의울타리안에서동화되는것이쉽지않기때

문이다. 2004년 11월 20일노깜프(Nou Camp)에서바르셀로나- 마드리드의

경기가열렸다. 이경기 1주일전마드리드의산띠아고베르나베우구장에서

스페인-잉 랜드 간의 친선 경기가 열렸었고 이 경기에서 스페인 관객들은

인종주의적구호를외침으로써국제적인비난을받고있었다. 그러자노깜

프에운집한바르셀로나의팬들은모자이크를통해“Ja som 125,000 (우리는

12만 5천명이다)”를새겼고거대한현수막에 어로”We are not Spain”이

라고걸었다. 이를통해자신들은인종주의적인스페인사람들과는다른사

람들이라는것을세계에알린것이다.

다만이러한지역주의적분열에도불구하고, 스페인이이중적인민족주의

정체성의 국가라는 점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고18) 이러한 인식

이축구계에도점차확산되고정착되고있는듯보인다. 일례로, 2011년 8월

스페인슈퍼컵(Supercopa) 결승전에서 FC 바르셀로나선수들과레알마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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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스페인 내에서 지역민족주의가 가장 급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바스크의 경우에도, 2007년 바스크 대학사회정치학과 팀의 조사에서 지역민의 39%가 자치(autonomía)를, 30%가독립(indepentismo)을, 27%가연방주의(federalismo)를선호한다고 답함으로써 지역민의 70%가 독립보다는 약화된 형태의 분리를 원한다는것을보여주었다. (http://es.wikipedia.org/wiki/Nacionalismo_vasco)

드선수들이거친몸싸움을벌여집단적인충돌의일보직전까지갔었다. 그

러자 유럽컵 예선을 앞두고 대표팀 주장인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까시야스

는바르셀로나구단의대표팀선수인뿌욜, 샤비와함께갈등을완화하려는

노력을보여주기도했다.19) 여기에는최근스페인국가대표팀이눈부신전과

를올림으로써대표팀에대한자긍심과애착이신장된것이한몫을한것으

로보인다.

IV. 지구화 시대의 도래와 축구 지역민족주의의 새로운 국면

1990년대이래로세계인의삶을바꿔놓기시작한지구화의물결은유럽프

로축구계에도거세게몰려왔고 1990년대말부터새로운국면이펼쳐지기시

작했다. 지구화는축구시장의개방화를불러와, 선수들의자유로운이동, 축

구팬과소비의국경없는확산, 스타플레이어의세계적명사(名士)화, 팀선

수의 다국적화, 명문 구단의 초국적 기업화 등을 유발했다(Castillo 2008,

711). 이러한변화의요인이된것은무엇보다도자금의규모에있었다. 여기

에대해축구사회학자줄리아노티는다음과같이진단한다.

경이적인규모의자본이완전히새로운원천에서흘러들어왔다. 그것은위성과 유료시청 TV 네트워크, 인터넷과 텔레커뮤니케이션 회사, 초국적스포츠용품회사, 광고회사, 클럽자산의판매를통한주요주식시장이다.(Giulianotti 2002, 27)

이와 같은 환경적 변화에 법률적인 촉매 역할을 한 것은 1995년 겨울 EU

법원에의해판결된이른바보스만(Bosman) 룰이었다. 보스만룰은 EU의클

럽들이 EU국가 출신의 선수들을 아무런 제한 없이 기용할 수 있는 길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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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까시야스는전화를걸어양팀소속의국가대표선수들이저녁을같이할것을제안했다. 그러나이에격분한레알마드리드감독주제무링뉴(Jose Mourinho)는까시야스를 다음 경기에서 후보로 벤치에 앉혔고 저녁모임은 취소되었다(Marca 24agosto 2011).

주었다. 또한 EU 국가에서국적을취득한모든선수들이 EU 국가출신선수

들과동등한법적지위를갖게되었기때문에과거유럽식민지국가출신선

수들이 EU 국가의클럽에대거 입될수있게해주었다.20) 보스만룰이적

용되기전스페인쁘리메라리가의외국인선수비율은 14.5% 에불과했으나

보스만룰적용직후 1998년 38.5%로올라가더니 2003년에는 45%까지상승

했다(King 2003, 92). 국프리미어리그의경우보스만룰이적용되기직전

인 1995/6 시즌외국인선수의비율은 37% 으나 2007/8 시즌엔 63%가외

국인선수로채워졌다(Daily Mail, March 28, 2008).

100년가까이지역민족주의의정체성으로서기능해온스페인의지역구

단들에게 지구화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2003년 라뽀르따(Joan

Laporta) 회장의취임을계기로세계화를적극적으로활용하기로한바르셀

로나 구단은 확장된 수입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지

향하게된다. 이를위해바르셀로나구단은자신들의유소년클럽을통해육

성한 지역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한편 거금을 들여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을 입하 다. 2003년호나우지뉴, 2004년사무엘에토등을 입하

여 2004/5, 2005/6 시즌, 연이어스페인쁘리메라리가를제패했고 2005/6 시

즌에는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다. 구단의 회원(Socio)은 2003년 10

만명에서 2010년 17만 5천명으로늘어났는데이중에서 50%는외국인또는

스페인의다른지역거주민이다.21)

바르셀로나의세계브랜드화전략은국제사회에대한기부로도이어졌는

데국제협력프로그램을위해수입의 0.7%를기부하기로했고UNICEF에대

한후원으로서유니폼에 UNICEF 로고를부착하는것과함께 5년동안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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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실벨기에축구선수보스만이 EU 법원에제소함으로써진행된이판결의핵심은팀과의계약이끝난선수에대해서는구단이이적료를요구할수없다는것이었다.EU 내에서 출신 국가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차적인 판결이었는데오히려이판결이유럽축구계에엄청난파장을불러온것이었다.

21) http://www.fcbarcelona.com/web/castellano/noticies/club/temporada09-10/04/13/n100413110400.html

150만유로를기부하기로했다.22)

이러한 세계 브랜드화는 경제적인 효과를 낳았는데 홈 경기 중계권 협상

에서천문학적인금액의계약에성공하여 1999년 6월스페인뗄레포니카와

무려 4억 달러의 금액으로 2003-2008년 5년 중계권에 합의했다(Ascari and

Gagnepain 2006, 80). 그리고나이키사의로고가그려진유니폼을입는조건

으로 5년동안 1억 5천만유로를받는계약에도성공했다(Nili 2009, 262).

그러나 FC 바르셀로나가 까딸루냐 정체성을 버리고 세계화의 전략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라뽀르따 회장은 2003년 회장 선거에서 바르셀로나

구단에서뛰기위해선외국선수들이까딸루냐어를의무적으로배워야할것

을계약사항에넣기로결정했다(Nili 2009, 265). 또한까딸루냐정체성수호

정책의일환으로서 2007년, 빅리그감독경험이없는조셉과르디올라(Josep

Guardiola)를감독으로선임하여세상을놀라게했다. 과르디올라는 1992년

바르셀로나구단이처음으로유럽컵에서우승했을때선수로뛰었던인물로

서까딸루냐출신일뿐아니라그동안바르셀로나유소년팀을지도하고있

었기때문에까딸루냐의아이콘과같은인물이었다. 과르디올라는호나우지

뉴, 에토를 다른 팀에 넘기고 샤비, 이니에스따, 메시 등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 출신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 다. 그리고 2008/9 시즌에는 쁘리메라

리가, 국왕컵, 유럽챔피언스리그를제패하여삼관왕을달성했고 2009/10,

2010/11 시즌에도쁘리메라리가를우승했을뿐만아니라 2011년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물리치고챔피언스리그를네번째차지함으로써지속적인성

공을거두고있다.

2001/2년시즌총수입면에서 1억 3천 9백만유로를기록하며유럽구단들

중에서 9위에머물러있던바르셀로나는지구화시대의변화된환경을적절

하게 활용하며 아래의 표에서 보듯 성공적으로 수입액을 늘려갔고 2009/10

시즌 3억 9천 8백만유로의수입을올려레알마드리드에이어유럽의모든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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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22) http://www.fcbarcelona.com/web/english/club/club_avui/mes_que_un-club/mesqueunclub.html

구단중에서두번째로많은수입을기록했다.23) 스페인축구리그의많은팀

들이레알마드리드나바르셀로나만큼은아니더라도세계화전략을적극적

으로추진하고있다. 발렌시아, 데뽀르띠보꼬루냐, 아뜰레띠꼬마드리드, 세

비야 등의 구단들은 자금이 허용하는 한에서 외국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수

입하여다양한국적의선수들로선수단을구성하고있다.

그러나아뜰레틱빌바오구단만큼은전통적인순혈주의의유지를선언하

며전통을고수하고있다. 1994년아뜰레틱구단의회장으로임명된호세마

리아아르따따(José María Artata)는취임사에서여전히전통적인폐쇄주의에

대한자부심을드러냈다.

아뜰레틱빌바오는축구클럽이상이자하나의정신이기때문에구단의운 방식은 종종 합리적 분석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세계 축구에서 독특한 존재로 보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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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http://en.wikipedia.org/wiki/Deloitte_Football_Money_League#Comparative_table_of_revenue_.28and_ranking.29. 레알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유럽에서가장수입이많은두구단으로군림하게된데는스페인프로리그의 TV 중계료중 46.5%에해당하는금액을독식한것이결정적이었다. TV 중계료를제외한다면스페인의두구단의총수입은 TV 중계료의분배가비교적평등한 국프리미어리그의맨체스터유나이티드, 첼시등의수입보다비슷하거나조금적은수준이다.

단위: 백만유로. 괄호안은유럽전체클럽중의순위출처: http://en.wikipedia.org/wiki/Deloitte_Football_Money_League

정의한다. 우리는다른구단들보다낫거나못한것이아니라단지다르다. 우리는우리땅의자손들이우리클럽을대표하길바라고그럼으로써 비즈니스 개념이 아니라 스포츠 연합체를 보여주길 바란다. 우리는우리의선수들이단순히축구선수가아니라인간으로서형성되길바라는데우리땅에서자란선수들이데뷔전을치를때마다우리는우리선조들과구단창설자들의이데올로기와화합하여우리의목표를이뤘다고느낀다.(Ball 2003, 83)

거대자본의논리가재편해놓은새로운환경속에서빌바오구단이취한

전략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다. 전통적인 검약주의에 따라 1980년대 중반

까지도빌바오의선수들은스페인다른팀선수들의 1/4에불과한연봉을받

고있었는데이결과 1990년대중반까지 50여명의바스크선수들이바스크

를떠나다른팀의유니폼을입게되었다(Nili 2009, 263).

이런상황에서 1998년아뜰레틱이 2위로리그를마감하자빌바오시민들

은 열광했다. 수만 명의 인파가 거리를 메웠으며 바스크 신문들은“돈 많은

자가이긴다는설이과학적이아님이입증되었다. 계량되지않는요소들, 즉

팀의힘, 정체성, 정신과열정이아직까지중요하다는것이입증되었다”라며

보도했다(MacClancy 1996, 66). 그러나이를기점으로아뜰레틱의성적은하

향세를타기시작했고 2005/6, 2006/7 시즌에서마지막경기까지마음을졸

인 끝에 17위를 차지하며 가까스로 2부 리그 강등을 모면했다. 구단 역사상

초유의사태인 2부리그강등이시간문제로다가오자선수의순혈주의전통

을고수할것인지에대한오래된논란이아뜰레틱의팬들사이에서다시불

거졌다. 여전히다수의팬들은전통을포기하느니차라리 2부리그에서뛰는

것을보겠다는의견을보 다(Castillo 2008, 718).

순혈주의는고수하기로했지만재정적위기앞에서아뜰레틱구단은 2008

년, 구단역사상처음으로선수들의유니폼에상업광고를허용하기로결정

하고 3년동안 6백만유로를받는조건으로바스크석유회사 Petronor와계

약했다. 여기에대해팬들의항의가잇따르자구단은바스크회사들만이스

폰서가될수있다고못을박았다(Nili 2009, 265).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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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빌바오구단은UEFA 컵출전을앞두고유명디자이너인다리오우

르사이(Dario Urzay)에의뢰하여전통적인붉은색흰색세로줄의유니폼을

흰색바탕에붉은색원형모양이새겨진유니폼으로변경했다. 이새로운디

자인은 2005년 스페인의 그래픽 아트상을 받은 것은 비롯하여 여러 전문가

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나 아뜰레틱의 팬들은 전통 디자인을 수정한 것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고 결국 새롭게 선출된 페르난도 라미키즈(Fernando

Lamikiz) 회장은 새로운 디자인의 유니폼은 어웨이 경기에서만 사용하기로

하고홈경기에선전통디자인의유니폼을입도록했다(Castillo 2008, 715).

세계화 시대 바스크 구단의 문제는 한 질문으로 요약된다. 이렇게 순혈주

의를 고집하는 폐쇄적인 구단이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대해많은전문가들은부정적인시각을보이고있다. 최근빌

바오의 유력지(紙)인「엘 꼬레오 El correo」가 빌바오 팀의 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벌 는데여기에서많은팬들이여전히구단의철학을지지했지

만적지않은수가구단의정책이변해야한다고말했는데이런의견을보인

팬들은몇년전「엘문도 El mundo」지의조사때수치인 24% 보다늘어났다

(Castillo 2008, 718). 구단정책의철회를주장한팬들은 1) 현재축구세계의경

쟁적관점에서순혈주의정책은유지되기어렵고 2) 유럽과세계축구무대에

출전하기위해선좋은성적이필요하며 3) 저출산과다른바스크팀들의경쟁

추세로 충분한 바스크 선수들을 확보하기 어렵고 4) 이 정책이 현재 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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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단홈페이지(www.athletic-club.net)의자료를토대로편집

사회의복수성과새로운전지구적현실을반 하는것이아니라는점을들고

있다. 이에비해구단의정책을지지하는세력은 1) 나쁜성적은구단정책의

결과가아니라잘못된행정의결과이고 2) 밖에서선수를데려온다는것이더

나은성적을가져온다는보장이없으며 3) 구단의정책은빌바오구단을독

특하게 만들었으며 결과에 관계없이 팬들의 충성심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Castillo 2008, 718).

VI. 나가면서

오늘날 세계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군림하고 있는 축구

는세계의많은곳에서지역그리고국가적정체성을담보하는매체가되고

있다. 특별히 지역민족주의의 전통이 뿌리 깊은 스페인에서 축구는 극심한

사회적 변화의 국면 속에서 지역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체성의 충돌과 협상

이빚어내는다양한양상을표출해왔다.

시의성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최근의 양상이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지구화가 가져온 변화된 환경은 스페인의 모든 구단들에게 새로

운도전으로받아들여지고있다. 대부분의구단들은지역정체성의대표성을

유지하면서도 지구화의 개방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

운시대의환경에대처해가고있다. 그러나최근스페인국가전체의어려운

경제사정과 맞물려 전반적으로 스페인 구단들은 재정난을 겪고 있고 이를

타개하기위해부심하고있는상황이다.

지구화의 변화된 환경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구단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구단으로보인다. 두구단은회원소유체제를유지함으로써시

민구단으로서 지역 정체성의 확고한 수호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동시

에자본의논리에적극적으로편승해다양한방법으로구단의수입을늘리고

우수한선수를스카우트하여좋은성적을거둠으로써총수입면에서세계 1,

2위를기록하며세계적인브랜드로서군림하고있다. 다만최근의 TV 중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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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협상에서쁘리메라리가전체중계료의 46.5%를두구단이가져갈만큼

독식하고있는상황은다른팀들의재정을더욱어렵게만들고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뜰레틱 빌바오가 채택하고 있는, 선수단의 순혈주

의는 상당히 특이하다. 지구화의 조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빌바오구단의순혈주의에대한고수가빌바오시의폐쇄

성을의미하는것은아니다. 전통적인공업중심도시로서쇠퇴의길을걷고

있던 빌바오는 1980년대 말부터 변화를 꽤하기 시작하여 서비스 산업 중심

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광산산업을 위한 인프라 구조물과 공업용 항만시설

을걷어내고유명건축가들을동원하여경전철, 공항, 다리등을건설하 다.

1997년프랑크게리(Frank Ghery)의포스트모던건축물인구겐하임박물관

이완공되어문을열었고이박물관은빌바오시를일약초국적도시로만들

었다. 이로써빌바오는한해 60만명이상의관광객이찾는활력있는도시

가되었다.

그렇다면빌바오구단의순혈주의역시폐쇄주의라는딱지를붙여부정적

으로만볼것이아니라전통의고수라는점에서빌바오시민들의지역적자

긍심의보루로볼수도있을것이다. 앞서살펴보았듯아뜰레틱빌바오구단

이근대이래핍박의역사로점철된바스크인들의삶과동일시되며 100년이

상 바스크 정체성의 결정체로 기능해 왔기 때문에 빌바오 구단의 상징적인

전통을허무는것이결코쉽지않을것이다. 아뜰레틱빌바오의팬들이성적

보다도전통을더중요하게여기는것은이런이유에서이다.

모든종류의정체성을약화시키는결과를초래하는지구화가진행될수록

지역적정체성의형성에대한축구구단의기능도완화될가능성이높다. 전

지구적으로 중계되는 TV 네트워크를 통해 축구구단은 지역을 초월한 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유럽 많은 구단들은이미 이러한 상황을 맞고 있다. 다

만 민족주의라고 불릴 만큼 지역주의의 뿌리가 깊은 스페인에서 축구가 지

역정체성을 대표해 온 오랜 전통이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될 것인지 앞으로

의양상이궁금하지않을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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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호 준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email protected]

논문투고일: 2011년 9월 13일심사완료일: 2011년 10월 14일게재확정일: 2011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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